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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로 떠나는 울산 문화재-울산사랑 3

박창홍 작성일 03-12-01 09:41 10,798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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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축은 넉넉하고 푸근한데
석천리이씨고가/차씨재실 - 11월
오래된 건물을 보는 데는 겨울이 제격이다. 자연이 완전히 옷을 벗은 겨울엔 건축물이 아름다움을 오롯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한 고풍스러운 기와, 반질반질 닳은 마루, 문풍지가 떨어져나간 문 등에서 그곳을 지키던 사람들의 따뜻한 인간미가 스며나와 겨울에도 훈기를 느끼게 된다.

울산은 역사에 비해 오래된 건축물이 많지 않다. 향교나 동헌, 정자가 아닌 민가로는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이씨고가가 유일하게 울산시문화제자료 제3호로 보호되고 있다. 울산에서 꽤나 세도를 누렸던 학성이씨의 파종가인 이씨고가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살이를 한눈에 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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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고가] 웅촌면 석천리에 있는 이씨의 종가는 조선 양반집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잘 지어진 한옥의 고풍스러움을 기대하고 길을 나서도 좋다. 멀지않은 길이라 짧은 겨울 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울산대학교 앞에서 부산가는 국도를 따라 웅촌으로 향한다. 9km쯤 가면 신호등을 만난다. 왼편에 미래복지재단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좌회전해서 들어간다. 시골분위기가 완연하다. 추수를 끝낸 들녘에 다소 쓸쓸하다. 20여분만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고 문화재를 알리는 듯한 안내판이 보인다. 오른편에도 고가가 한 채 눈에 들어온다. 안내판은 독립운동을 했던 이재락공의 생가를 알리고 있다. 이 건축물은 이씨고가의 부속건물 쯤으로 보아도 좋을 듯한 서당이다.

이씩가는 왼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 안에 있다. 길이 좁아 이런 곳에 그런 대가댁이 있었겠냐 싶다 . 원래야 훤히 트인 넓은 마당이었겠지만 긴 세월이 골목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니랴. 조금만 들어가면 오른편에 담잠으로 둘러쳐진 기와집이 나선다. 정문은 잠겨있다. 왼쪽으로 돌아가면 살림집이 한채 있다. 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 집 구경 좀 해도 되느냐고 물으면 집안에 있는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 들어가라고 한다.

입간판이 이 집의 가치를 설명해 놓고 있다.

′학성이씨의 파종가집으로 조선중기 영조시대에 학성이씨의 시조인 이예의 12대손인 이의창에 의해 건립됐다. 고종때 증손 이장찬에 의해 한번 중수됐고 1934년 전체적인 중수가 다시 한번 이루어졌다. 대문채 사랑채 살림채의 영역 분리가 명료하고 독립된 사당을 갖고 있는 조선조 상류 주거의 종가로서 면모를 보여준다. 사랑채는 퇴가 있는 3칸 홑집의 평면이며 오량가구의 위에 팔작 지붕을 얹었다. 살림채는 정면 6칸의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이며 특히 대청앞의 세살문은 정피살로 뛰어난 의장성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기와지붕이 얹혀진 대문에서 시작된다. 문간방이 달려 있다. 아마 하인들이 짚를 꼬며 농담을 주고 받았으리라. 한편엔 뒷간이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커다란 옹기가 아직 그대로 묻혀 있는데 지붕은 흔적도 없고 담도 쓰러져버렸다.

옆으로 돌아가면 주인마님이 기거했던 사랑채다. 방 3칸에 마루와 정원이 딸린 반듯한 형태다. 오른쪽엔 방과 곳간이 줄지어 서 있다. 넉넉한 살림살이를 읽게 한다.

뒤로 작은 문이 나있다. 이씨 집안의 살림이 이루어졌던 안채다. 6칸이나 되는 방과 마루, 그에 딸린 여러 개의 방과 부엌이 ′ㄷ′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림규모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가운데엔 제법 큰 정원이 있는데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살림채 뒤로는 뒤뜰이 제법 널찍하다. 후원을 거닐며 시름을 달랬을 마님의 발자국은 남아있지 않을까.

불을 때는 부엌이며 손때 묻은 마루며 삐걱거리며 젖혀지는 곳간 문이며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건만 보존상태는 왜 이리 엉망인지 아쉽기 그지없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고 조선시대 건축양식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인데…. 대책 없이 발라놓은 시멘트자국 들이 눈살을 찌푸르게 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 계곡 찻길 건너편 옆에 자리한 옛 건물도 한번 살펴볼 만하다. 서당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들어갈 입구가 없다. 앞으로 흐르는 하천이 눈길을 잡는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벼랑이 탄성을 자아낸다. 하천바닥에 세로로 늘어선 칼날 같은 돌무더기도 이채롭다. 서당의 위치론 딱 알맞다. 지금은 집이 들어서 운치가 제대로 발해지지 않겠지만 그 옛날엔 물소리만 졸졸 들리는 천혜의 독서공간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계곡을 따라 옆으로 가면 서원도 하나 있다. 아직 누군가 문간방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 본채는 3칸 방이 있고 가운데 마루에도 문이 달려 있다. 축담이 유난히 높고 문루도 일부러 높이 세웠다. 기상을 높이려는 의도적인 건축으로 보인다. 마루 앞으론 동그란 화단이 조성돼 있는데 이 역시 옛모습 그대로는 아니지 싶다.

석천리를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복원해 생각해보면 더욱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웅장한 종가댁이 있고 1km가량 떨어진 곳에 서당과 서원이 있다. 주위로는 논이 가득하고 앞으로는 냇물이 흐른다. 멀리 집 뒤론 야트막한 산이 두르고 있다.

돌아오기가 서운하다. 길을 계속 나아가면 전형적인 재실 하나를 더 볼 수 있다. 길은 계속 이어진다. 회야댐 상류에 이른다. 연안 차씨 재실이 있다. 시간상으로는 20여분거리. 그런데도 석천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상수원 보호를 위해 철거가 예정된 지역이기 때문에 현대식 건물이라 곤 거의 없는 마을 분위기가 훈훈하다. 일가인 차씨만 사는 탓에 대문을 닫아둔 집도 하나 없다. 재실은 마을 들머리에 있다.

기와를 얹은 대문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문간방과 부엌이 있다. 한쪽 방엔 제사때 쓰는 그릇이 보관돼 있다. 본채는 2칸짜리 손님용 방과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뒤로 높다란 위치에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군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제 지내는 날엔 군불을 때서 방을 덥히고 음식 장만도 한다. 조상을 잘 섬기려 했던 조선시대 유교정신이 엿보인다. 마을 앞에 확 펼쳐진 회야댐의 갇힌 물도 시원스럽게 다가온다.
<경상일보 정명숙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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