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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간신문 만평보기

박창홍(15) 작성일 04-12-14 18:31 9,778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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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조간신문 만평보기
 
 제목    사실(事實; fact)이 왜곡되고 날조된 채 떠돌아 다니는 '육사교장의 편지'
번호  7016  글쓴이  박상표 (dandelio)  등록일  2004-12-13 23:57:41  조회수  37

역사를 공부하면서 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한다.

우선, 역사는 인류 생활의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일이다. 과거에는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즉 개인-집단-민족의 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사실(事實; fact)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비록 우리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을 다 모을 수 없거니와 모은다 해도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역사가는 과거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歷史的 事實, historical fact)만 기록한다.

또한,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이다. 역사가는 많은 사실(事實; fact) 가운데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실(史實, historical fact)을 선택해서 해석하고 서술하여 하나의 역사, 곧 역사상(歷史像)을 만든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의 선택과 해석에는 역사가의 주관(主觀)이 개입한다. 또한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시대적 요구와 현실 인식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에는 역사가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事實; fact) 자체를 왜곡하고 날조하여 사실(史實, historical fact)로 선택한 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보수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거나 진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事實; fact) 자체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것은 ‘가짜 역사’ 또는 ‘거짓 역사’가 아닐까?

[육사 교장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장문의 편지글은 ‘가짜 역사’ ‘거짓 역사’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와 매춘, 원조 교제를 정당화한 <<아버지>>라는 소설이 유행하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준 것처럼, [육사 교장의 편지]라는 글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이 글은 박정희가 1960년대 초반에 미국과 서독을 방문했을 당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첫째 박정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5.16 쿠테타 세력을 인정하지 않아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아서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둘째 서독을 방문했을 때, 파견나온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박정희를 만나자 울음을 터뜨렸으며,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도 그들과 함게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셋째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서 박정희가 계속 눈물을 흘리자 옆좌석에 탄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을 건네주며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다”며 원조를 약속했으며, 박정희가 서독 의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라는 연설을 반복하며 애걸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조목조목 이 글이 어떻게 사실(事實; fact) 자체를 왜곡하고 날조했는지 따져보도록 하자. 이러한 왜곡과 날조 사실을 밝힌 이는 김재중 기자다. 그는 <<월간 말>> 2004년 12월호에 [‘역사왜곡’도 마다않는 X맨들의 허상]이라는 기사로 다음과 같이 사실(事實; fact)을 밝혔다.

우선 이 글은 출처가 불분명해서 원작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유언비어일 뿐이다. 이 글이 [육사 교장의 편지]로 불린 이유는 2003년 11월 22일에 육군사관학교 교장 김충배가 강당에서 생도들에게 한 강연 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김충배가 쓰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전기작가 윤한채가 육사 교수진에게 원고를 제공해 강연용으로 보충했다고 한다.

2003년 6월 김유복(10대~11대 국회의원)이 <<로터리 코리아>>에 이 글의 내용과 거의 유사한 글을 기고했고, 2003년 6월 ‘보수원로’라고 자처하는 김영광(전 국회의원)이 <<헌정>>에 똑같은 내용을 자기 글처럼 기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윤한채, 김유복, 김영광이 그 글을 기고하기 훨씬 전인 2003년 2월 이전에 이미 인터넷에서 출처불명의 이 글이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 글은 출처불명의 유언비어에 불과하다.

그럼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첫째 박정희가 케네디에게 문전박대를 당해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는 사실무근이다. 박정희는 5.16쿠테타 직후인 1961년 11월 13일 미국을 방문했다. 1961년 11월 15일과 16일자 ‘조선일보’ 1면은 박정희와 케네디의 수뇌회담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오히려 당시 ‘조선일보’ 워싱톤 특파원이었던 문명자의 증언에 의하면, 박정희는 미국이 요구하지도 않은 베트남 전투병 파병을 약속하고, 쿠테타 이후 집권을 보장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둘째 박정희는 1964년 12월 10일 서독을 방문했다. 환영나온 인파에 감회가 젖어 박정희와 육영수는 눈물을 흘렸고, 광부와 간호사들도 눈시울을 적셨다는 보도가 있다. 이 부분은 사실과 부합한다.

셋째 박정희가 차 안에서도 눈물을 그치지 못하자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이 “우리가 도와 주겠다”며 원조를 약속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한 것이다. 독일의 재정 원조 계획은 박정희가 서독을 방문하기 전부터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1964년 12월 5일자 신문에는 “서독이 한국에 재정원조 3,900여만 달러를 약속했다”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하고 있다. 게다가 박정희가 서독 의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 주세요”라고 연설했다는 이야기는 더 더욱 사실이 아니다. 박정희는 서독 의회를 방문하기는 했지만 2층 특별방청석에서 그저 환영 연설을 들었을 뿐이다.

사이비 수구언론인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이렇게 왜곡되고 날조된 [육사 교장의편지]를 재탕 삼탕 우려먹으며 교묘한 이데올로기 공세에 활용하고 있다.

2003년 9월 3일 조선일보 논설주간 강천석은 ‘박정희의 눈물’을 소개하며, “단병호,이남순,문성근, 명계남씨는 이 ‘숨가쁜 역사’와 ‘눈물 젖은 빵’을 모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라를 벼랑으로 떠밀고 공영방송을 통한 현대사 비틀기를 계속한다면, 옛시절 용어로 비국민(非國民)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월간조선 2004년 2월호에는 ['육사 교장의 편지'로 다시 유명해진 박 대통령과 파독 광부들의 만남]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려서 박정희 미화에 일조했다.

박정희의 친일행적을 연구해온 '오마이뉴스'의 정운현 편집국장은 [육사 교장의 편지]가 예비군 훈련장에 나타났다는 김재중 기자의 제보를 받고 "해외에 나가 고생했던 광부들의 노고를 박정희 미화에 이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구나 개발독재로 얻은 경제성장의 그늘을 묻어둔 채, 박정희에 대한 향수만을 자극하는 내용이시민교육에 활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 사상>>에서 "박정희 미화 세력이 사회의 상층부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 사실과 논리는 극소수 사람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다 끝날 뿐이다."고 지적했다.

김재중 기자는 "아직도 인터넷 검색창에 '박정희'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그와 관련된 수많은 왜곡과 거짓을 만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그 내용이 단순히 흥미롭고 감동적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다른 인터넷 게시판에 퍼다 나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마저 거짓 역사를 유포시키는 X맨의 대열에 합류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는 말로 기사를 끝맺었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은 시대정신이나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라의 얼마든지 시대에 달라질 수 있다. 보수적 가치관(세계관)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든 진보적 가치관(세계관)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사실(事實; fact) 자체를 왜곡하고 날조하여 사실(史實, historical fact)로 선택한 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가짜 역사’ 또는 ‘거짓 역사’다.

시대정신이나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이나 '광주 시민 학살', '고문과 조작에 의한 가짜 간첩 양산' 등과 같은 사실(事實; fact) 자체는 왜곡하고 날조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사실(事實; fact)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뿐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늘 '역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는 사실(事實; fact) 그 자체에 근거해서 '진실'을 말하기 어렵고, 사실(事實; fact)의 역사적 평가가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광주 5.18 국립묘지의 전시관 입구에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인간의 역사는 ‘기억과 망각’의 산물이 아닌지 모른다. 과거의 사건이나 상황은 기억을 통해 현재의 시점에서 의미와 상징이 부여된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과정을 통하여 후대에 전승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즉, 기억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필요로 하듯이 ‘기억’은 ‘망각’을 필요로 한다. 기억은 현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그 의미가 지나치게 왜곡되거나 과장된다. 어떤 기억은 비이성적이고 광적인 상태에서 집단적으로 회상되고 문화적 표상이라는 상징장치를 통하여 널리 유포된다. 하지만 또 다른 기억은 의도적으로 은폐되고 망각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육사 교장의 편지]와 같은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신화 만들기는 지나치게 왜곡되고 과장되었다. 그러나 '친일파와 친일행위 진상규명'이나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광주 시민 학살', '독재 정권 시기 동안 안기부-경찰-검찰 등 국가기관의 고문과 조작에 의한 가짜 간첩 양산' 등 이른바 국가비밀과 국가보안법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은 오랫동안 '망각의 역사‘ 속에서 잊혀져 있기를 강요당했다.

이땅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망각의 역사'를 사실(事實; fact)에 근거해서 '진실'을 밝혀내고,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나의 고민은 내일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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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육사 교장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는 글

- 고 박정희대통령 내외분께서 독일에 차관을 빌리려 갔었을 때의 눈물겨운 이야기 -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들이여!
여러분들은 선배들이 겪은 아픔을 알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땀과 눈물을 고민하고 헌신한 적이 있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선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상고해 볼만하다. 그러나 이제 젊은 여러분들의 후배들이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의 터전을 가꾸어야 할 때가 왔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에 발생한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 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 까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화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코올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고아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서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할 수 있을까?"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 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 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류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 시다" 눈물에 잠기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명 한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을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 가세요. 고향을 가고 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기리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이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렀다.


이 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 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를 보내주려고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면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 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 흘리며 일한 우리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선배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우리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이 그때 땀 흘리며 일한 오늘의 선배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라.


중국, 인도, 대만 등이 우리의 경쟁력을 심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여러분의 후배들의 풍요를 더 이상 보장할 수 없다.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근 10년 간 1만 불 대를 넘지 못하고 내부 갈등과 이기심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하고 있다.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 불 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여당도 야당도 젊은이도 노인도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우리들을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를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 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글쓴이 : 미상


* 꼬리말 쓰기

아무개 1 : 다시 접하는 옛 이야기이지만 눈물겹습니다. 힘겹던 그 시절, 국력보다 더 큰 나라 사랑의 힘으로 버텨낸 그들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2004/12/10]

아무개 2 : 교장 선생님! 내일이면 오십대인 저희 세대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데,제자식에게도 이해를 못 시키겠더군요. [2004/12/10]

아무개 3 : 참다가 결국 화장지로 눈물 콧물을 닦아 냈습니다. 저도 어릴 때 그런 걸 보며 자랐지요. 아마 우리 자식들에게는 이해시키기가 힘들 것 같아요. 너무 달라요. 사랑의 방식도, 인생관과 가치관도.... 어떡해야 하나요? 이 나라를,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2004/12/10]

아무개 4 : "경제를 이룬 영웅"과 "언론 탄압한 독재자"중에 어느것이 맞느냐?는 어느 학생...이렇게 표현이 극과극일수가 있느냐? 고 했다지요? 먹고 살아야 이념도 있는거지요. 사흘만 굶기면 생각이 달라질텐데... [2004/12/10]

아무개 5 : 어쩌다 서점에서 비 슷한 글을 읽다가 아들 보는 앞에서 눈물이 나올려 해서 힘들었던 적이 생각납니다. 요즘도 "아빠, 그때 책보다가 울었지!" 하곤 합니다. [2004/12/10]

아무개 6 : 이 아침에 절 울리시는군요...정말 마음에 와닫는 글 입니다..학교다닐때 학국적민주주의 란 말에 반감하곤 했는데..지금 사람들이 그럽니다..막대기를 최고자리 앉혀놓아도 뭐라 하지 않을테니 경제만 살려 달라고 .정말 큰일 입니다..내년에는 더 어렵다는데..국회는 ...???? [2004/12/11]

아무개 7 : 읽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ㅡ.ㅜ 잘 읽었습니다. 퍼갈께요. [2004/12/11]

아무개 8 : 그래도 이 과정들을 겪은 분들은 이런일이 있을때 역사의 증언을 해 주어야 합니다..하긴 요즘 어린사람들이야 믿지않을려고 하지만...제 세대만해도 그런과정을 겪은 사람은 많습니다....그리고 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자세한 알고있고요... [200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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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 찔리는 human들 제법 될 끼라~~ 댓글1 최승건(15) 12-16 9628
1605 뻔할 뻔^^ 댓글1 최승건(15) 12-16 9821
1604 親舊(오래도록 가깝게 사귄 벗)의 경우. 댓글3 최승건(15) 12-15 9867
1603 그래도(Anyway). 댓글1 최승건(15) 12-15 9870
1602 동기여러분 감사합니다. 댓글1 이수철(08) 12-15 9888
1601 16기 동기회 분담금 납부 실적 김익환(16) 12-14 9492
* 조간신문 만평보기 댓글5 박창홍(15) 12-14 9779
1599 ♡ 하면 할 수록 좋은 말들 박창홍(15) 12-14 9852
1598 프로의 세계. 최승건(15) 12-14 9939
1597 빈 것에 대하여 댓글2 양국용(15) 12-14 9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