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최승건(15)
작성일
05-01-01 23:47 10,908회
1건
본문
<STYLE>P{margin-top:2px;margin-bottom:2px;}</STYLE>
<STRONG>설날 이야기...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BR><BR></STRONG>
<UL><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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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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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CENTER>
<TR>
<TD><PRE><UL><FONT face=굴림><SPAN style="FONT-SIZE: 12pt"><UL>
새해의 노래
1.
온겨레 정성덩이 해 돼 오르니
올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2.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 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서 세월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을
맘껏 펼쳐 보리라
정인보 작사
이흥렬 작곡
</UL></SPAN></FONT></UL></PRE></TD></TR></TBODY></TABLE></UL><EMBED src=http://blogfile.nate.com/data/10/ownerhss/339751.mid hidden=true type=audio/mid autostart="true" volume="0" loop="-1">
<UL type=disc>
<LI><FONT color=teal size=2><B>신정(新正, 양력 1월 1일)</B></FONT><FONT size=2> :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날로써, 공휴일이다. 몇 해 전 까지 만해도 1월 3일까지 3일간이 공휴일에 포함되었으나, 공휴일의 수가 많다 하여 3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다. 또 IMF시대에 즈음하여 1999년부터는 2일도 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음력으로 과세하던 옛날에는 정월 초하룻날을 '설날'이라고 하였지만 서양력이 도입되고 양력 1월 1일을 '설'이라 칭하고 음력 '설날'을 '구정'이라 부르기도 하고, '민속의 날'이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공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음력 '설'에 새배드리고 성묘하는 풍속이 이어져 오고 있음에 국가에서는 음력 설을 공식적으로 3일 공휴일로 정하여 '설날'이라고 칭하고,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고 하여 1999년부터는 하루 공휴일로 지정하고 쉰다. 정월 초하룻날 신정은 지구가 태양의 근점(近點)을 지나는 달[月]의 첫날이다. 태양과 지구의 평균거리는 1억 4,960만㎞인데, 지구가 태양의 근점을 지나는 1월 초에는 250만㎞가 더 가까워지고 원점(原點)을 지나는 7월 초에는 역시 250만㎞가 더 멀어진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color=teal size=2><B>설 </B></FONT><FONT size=2>: 고려시대에는 </FONT><FONT color=teal size=2><B>원정(元正), 상원(上元), 한식(寒食), 상사(上巳), 단오(端午), 중구(重九), 동지(冬至), 팔관(八關), 추석(秋夕)</B></FONT><FONT size=2>의 9대 속절을 명절로 삼았고, 조선조의 《동국세시기》에는 사대 명절이라 하여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을 들었고, 이에 동지(冬至)를 더하여 오명절이라 하였으니, 설날은 오랜 전통을 지낸 명절임에 틀림없다.</FONT> </LI></UL>
<DL>
<DT><A name="'설'의 어원"><FONT color=green><B><I><BR></I></B></FONT></A><A name="'설'의 어원"><FONT color=green><B><I><U><'설'의 어원 </U></I></B></FONT></A><FONT color=green><B><I><U>></U></I></B></FONT> </DT></DL>
<UL type=disc>
<LI><FONT size=2>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떨쳐버리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새 출발을 하는 첫날이다. 이 '설'은 순수 우리말로써 그 말의 뜻에 대한 해석은 구구절절 하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그 중 하나가 </FONT><FONT color=teal size=2><B>'서럽다'는 `설'</B></FONT><FONT size=2>이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이 `여지승람(輿地勝覽)'이란 문헌에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러운지, 차례(茶禮)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모르겠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다음은 </FONT><FONT color=teal size=2><B>'사리다'[愼, 삼가다.]의 `살'</B></FONT><FONT size=2>에서 비롯되었다는 설(說)이다. 각종 세시기(歲時記)들이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한 것도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의 첫 시작을 경거 망동하지 말라는 까닭이다. 옛날 문헌들에 정초에 처음 드는 용(辰)띠날 말(牛)띠날 쥐(子)띠날 돼지(亥)띠날 그리고 2월 초하룻날을 신일(愼日) 로 적혀 있음을 근거로 하여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풀이한 기원설이다. 새해부터 처음 맞이하는 십이일을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이라 하여 여러 가지를 삼가며 조심할 것을 가르친 풍속이 있는 걸 볼 때, 매우 타당한 설(說)이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설'의 어원에 대해 또 다른 견해는 나이를 댈 때 </FONT><FONT color=teal size=2><B>몇 살(歲)... 하는 '살'</B></FONT><FONT size=2>에서 비롯된 연세설(年歲說)이다. 한국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우랄 알타이어계(語系)에서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산스크리트語) · 잘(퉁구스語) · 질(몽고語)'이라 한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돋고 새로 솟는다'는 뜻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하고 있다. 이 모두 정초와 직접 연관되고 있다. 중국의 어원사전인 `청문엽서(淸文葉書)'에 보면 연세를 나타내는 `살'· `잘'은 세(世)· 대(代)· 세(歲)· 수(壽)를 뜻하고, 또 대나무나 풀이나 뼈마디를 뜻하는 절(節)의 어원이라고도 했다. '몇 살 몇 살' 하는 `살'이 그 연세의 매듭(節)을 짓는 정초를 나타내는 `설'로 전화 됐음직하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또한 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 </FONT><FONT color=teal size=2><B>'설다. 낯설다' 의 '설</B></FONT><FONT size=2>'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설(說)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문화적 시간의 충격이 강하여서 '설다'의 의미로,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정착되었다. 곧 묵은해에서부터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에 있는 다소 익숙치 못하고 낯설은 단계라는 의미이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따라서 설은 동지로부터 시작하는 마무리 시기에서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새 시작의 설날을 정점으로 하여, 그리고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과 정월 대보름의 대단원까지를 한 선 상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BR></FONT></LI></UL>
<P><A name="설 - 동지와 설날과 대보름"><FONT color=green><B><I><BR></I></B></FONT></A><A name="설 - 동지와 설날과 대보름"><FONT color=green><B><I><U><설 - 동지와 설날과 대보름 </U></I></B></FONT></A><FONT color=green><B><I><U>></U></I></B></FONT>
<UL type=disc>
<LI><FONT color=green size=2><B>동지(冬至, 12월 23일경)</B></FONT><FONT size=2>를 '작은 설[亞歲]'이라 한다. 그래서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였다. 1년 12개월에 십이지(十二支)의 이름을 붙였는데 동지가 드는 음력 11월을 자월(子月), 12월을 축월(丑月), 1월을 인월(寅月)..... 등의 순으로 부르게 된 것도 동지를 세수(歲首)로 쳤던 시대의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태양은 '해'이며, 해는 '낮'이며 '년(年)'이다. 곧 태양을 통해 1년이라는 시간 주기를 인식하였으며, 또한 동지로부터 낮이[해가] 길어지고 태양의 힘이 다시 왕성해지므로, 동지를 1년의 출발로 삼았다. 동지는 태양력에 의한 구분인 24절기의 하나이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color=green size=2><B>설날[음력 1월 1일]</B></FONT><FONT size=2>은 태음력에 의한 새해의 출발이다. 음력 정월 초하루는 양력으로 동지로부터 두 달이 지난 입춘이 드는 2월에 있다. 정월 초하루는 달이 극도로 이지러진 상태에 다시 커 가는 출발점에 서있는 날이며, 묵은해와 작별을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전환점에 있는 날이다. 달[月]의 삭망(朔望)은 예로부터 사람의 삶과 동식물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므로 달이 없어지면 물리적인 삶이나 정신적 상황이 중지되는 전이기(轉移期)가 된다는 것이다. 설날은 바로 기존 질서에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질서에 통합되기 전까지의 전이기이다. 이 전이·과도기에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삼가 조심하는 여러 의식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설날을 신일 (愼日)이라고 부른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color=green size=2><B>대보름[음력 1월 15일]</B></FONT><FONT size=2> 역시 태음력에 의한 것이다. 보름은 설과 반대로 달이 완전히 차 오른 상태이다. 잠복과 죽음의 시기인 그믐과 초승의 전이기를 끝내고, 준비하고 삼가며 적응하는 상십이지일을 통한 후, 활동과 열정의 대 통합기에 접어든다. 이 날이 바로 대보름이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이상과 같이 우리 민족은 동지를 작은 설로 지냈고, 설도 쇠었고, 설과 상십이지일로 연결되는 대보름도 설 명절의 일환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곧 태양력이 태음력의 종속적인 역법으로 사용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설은 작은 설이던 동지에서부터 정초를 거쳐 설의 대단원인 대보름까지를 보아야 할 것이며, 정월 초하루는 설날로 보아야 할 것이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동지에서 대보름까지를 설로 잡을 때 통과 의례의 순차적 단계에서 보면, 동지는 묵은해에서 분리(分離)되는 단계이고, 설날은 새해로 옮겨가는 전이(轉移)단계이며, 대보름은 새해에 통합(統合)되는 단계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설날의 차례와 성묘 - 설날 아침 일찍 사당이나 대청에 세찬(歲饌)과 세주(歲酒), 떡국 등을 진설하고 조상에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였음을 알리는 차례를 드린다. 차례 다음 세배(歲拜), 음복(飮福)후, 조상 묘를 찾아가 간단한 세찬과 세주를 차려놓고 예를 올리는 것을 성묘(省墓)라 한다. 설 차례는 떡국차례라 하여 떡국을 제수(祭需)로 올리는 것이 상례이며, 그 밖의 제수는 기제사와 마찬가지이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경북 영일 안동 지방에서는 이날 눈이나 비가 와서 질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속담에 '설은 질어야 하고, 보름은 말라야 한다.'고 하였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각 집안마다 차례가 끝나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 뵙고 새해의 축원을 빌고 덕담을 나누는 하례(賀禮)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들은 비단 설날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겨울 농한기, 특히 설날부터 시작하여 설의 대단원인 정월 대보름날까지 즐겼다. 우리나라의 많은 민속놀이는 정월 대보름에 즈음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size=2>제기차기, 윷놀이, 널뛰기, 농악, 연날리기, 탈놀이, 쥐불놀이, 마을 단위의 석전(石戰), 차전놀이, 줄다리기, 횃불 싸움, 별신굿, 지신밟기, 기호지방의 거북놀이, 북청사자놀음, 영남지방의 광대놀이, 동북부 해안지방의 처용 놀이와 동제에 따르는 여러 가지 연희, 상원일 새벽의 계명(鷄鳴)점, 보리싹 점, 부럼 깨기, 그날 저녁의 달맞이와 달집 태우기, 액연 태우기 등의 공동오락을 즐기는데 이는 일가 친척과 동민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며 또한 각 개인과 가정, 마을 공동체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축원의례이다. 나아가 집약적 노동을 요구하는 농경 사회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의 협동 체계를 유지하려는 사회적 목적이 이러한 공동 놀이 속에 있었다.
<IMG height=71 hspace=3 src="http://kr.img.blog.yahoo.com/ybi/1/cd/c8/ownerhss/folder/17/img_17_171_0?1104527393.gif" width=100 align=right vspace=3 border=0><BR></FONT><FONT size=3></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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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A name="정월 설의 여러 세시 민속관행"><FONT color=green size=3><B><BR><</B></FONT></A><A name="정월 설의 여러 세시 민속관행"><FONT color=green><B><I><U>정월 설의 여러 세시 민속관행</U></I></B></FONT></A><FONT color=green><B><I><U> >
<IMG height=54 hspace=3 src="http://kr.img.blog.yahoo.com/ybi/1/cd/c8/ownerhss/folder/17/img_17_170_0?1104527363.gif" width=44 align=left vspace=3 border=0><BR></U></I></B></FONT></DT></DL>
<DL>
<DT>
<DT><FONT size=2>정월은 농한기이지만 새해를 시작하는 달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간의 창조를 위한 신성의례와 건강하고 풍요로운 새생활을 얻기 위한 여러 가지 축원, 점세의 의례를 행하는 시기이다. </FONT></DT></DL>
<UL type=disc>
<LI><FONT size=2>정월의 제의력(祭儀歷) - 1월 1일 설날, 1월 7일 인날[人日], 1월 8일의 곡식날, 정월 십이지일, 동제, 상원[대보름날], 귀신단지날 등이 있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color=green size=2><B>인날(정월 7일)</B></FONT><FONT size=2> - 인날은《동국세시기》의 기록을 보아도 중국 전래의 세시로서 주로 조선왕조의 궁중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사람의 생(生)을 축하하며, 잡 귀신을 막아 한 해의 질병을 예방하고 해충을 구제하는 날로 믿고 있다. 경북일원에서는 이 날 가족의 나이 수만큼 쌀을 내어 떡을 해 먹으면 일 년 동안 무병하다고 믿는다. </FONT></LI></UL>
<UL type=disc>
<LI><FONT color=green size=2><B>곡식날(정월 8일)</B></FONT><FONT size=2>은 풍작을 축원하고 점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이 날 오곡을 볶아 먹으면 그 해 곡식이 좀 치지 않고, 떡을 해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안동지방에서는 저녁에 국수를 섞은 수제비를 끓여 먹는다. 수제비는 열매, 국수는 덩굴을 의미하는 것으로 빨리 익을수록 그 해 농사를 빨리 짓는다고 한다. </FONT></LI></UL>
<UL type=disc>
<LI><A href="http://premium44.daum.net/Mail-bin/기념일1.htm#상십이지일"><FONT color=green size=2><B>상십이지일</B></FONT></A><FONT size=2>은 설날에서부터 열 이튿날까지의 일진(日辰)에 의해서 연초의 주기적인 점세, 제액(除厄), 기복(祈福)의 의례행위들이 관행되는 날이다. 곧 털 있는 짐승[쥐, 소, 토끼 등]의 날은 유모일(有毛日), 털 없는 짐승[뱀, 용]의 날은 무모일(無毛日)로 나누어 그날 마다 심한 금기가 따랐으며, 마침 설날이 유모일일 때는 풍년이 들며, 무모일일 때는 흉년이 든다고 전한다. 오늘날은 전통적 유습을 지켜지는 바가 있지만 약화되거나 소멸된 느낌이 든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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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동제(洞祭) - 정월 3, 4일</B></FONT><FONT size=2>에서 정월 대보름에 이르는 사이에 대부분의 마을들은 동제를 지낸다. 이는 농사의 풍요와 마을의 평안과 각 가정의 평안과 건강 등을 위함이지만 내용 및 풍속은 지방마다 차이가 있다. 또한, 제일(祭日)도 대부분 정월 보름날로 하지만 지방마다 다르고, 횟수도 다르다. 정월 동제는 축원과 점세의례, 유월보름 동제는 밭작물 수확의례, 상달 길일(吉日)의 동제는 벼농사의 수확의례와 관계 깊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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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정월 대보름날</B></FONT><FONT size=2>은 설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날로서 우리의 민속 중 가장 많은 민속놀이가 집중된 날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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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귀신 단지일(16일)</B></FONT><FONT size=2>은 집안에 귀신이 내왕하는 날이다. 이 날에는 출입하는 귀신을 막아 그 해의 액을 방지하고 풍년과 평안의 복을 기원하는 여러 행사가 관행되는데, 특히 마을 단위의 동제(洞祭)와 '지신밟기' 행사를 한다. <BR></FONT><BR><BR></LI></UL>
<STRONG>설날 이야기...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BR><BR></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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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PRE><UL><FONT face=굴림><SPAN style="FONT-SIZE: 12pt"><UL>
새해의 노래
1.
온겨레 정성덩이 해 돼 오르니
올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2.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 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서 세월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을
맘껏 펼쳐 보리라
정인보 작사
이흥렬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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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teal size=2><B>신정(新正, 양력 1월 1일)</B></FONT><FONT size=2> :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날로써, 공휴일이다. 몇 해 전 까지 만해도 1월 3일까지 3일간이 공휴일에 포함되었으나, 공휴일의 수가 많다 하여 3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다. 또 IMF시대에 즈음하여 1999년부터는 2일도 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음력으로 과세하던 옛날에는 정월 초하룻날을 '설날'이라고 하였지만 서양력이 도입되고 양력 1월 1일을 '설'이라 칭하고 음력 '설날'을 '구정'이라 부르기도 하고, '민속의 날'이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공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음력 '설'에 새배드리고 성묘하는 풍속이 이어져 오고 있음에 국가에서는 음력 설을 공식적으로 3일 공휴일로 정하여 '설날'이라고 칭하고,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고 하여 1999년부터는 하루 공휴일로 지정하고 쉰다. 정월 초하룻날 신정은 지구가 태양의 근점(近點)을 지나는 달[月]의 첫날이다. 태양과 지구의 평균거리는 1억 4,960만㎞인데, 지구가 태양의 근점을 지나는 1월 초에는 250만㎞가 더 가까워지고 원점(原點)을 지나는 7월 초에는 역시 250만㎞가 더 멀어진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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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teal size=2><B>설 </B></FONT><FONT size=2>: 고려시대에는 </FONT><FONT color=teal size=2><B>원정(元正), 상원(上元), 한식(寒食), 상사(上巳), 단오(端午), 중구(重九), 동지(冬至), 팔관(八關), 추석(秋夕)</B></FONT><FONT size=2>의 9대 속절을 명절로 삼았고, 조선조의 《동국세시기》에는 사대 명절이라 하여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을 들었고, 이에 동지(冬至)를 더하여 오명절이라 하였으니, 설날은 오랜 전통을 지낸 명절임에 틀림없다.</FONT> </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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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떨쳐버리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새 출발을 하는 첫날이다. 이 '설'은 순수 우리말로써 그 말의 뜻에 대한 해석은 구구절절 하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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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그 중 하나가 </FONT><FONT color=teal size=2><B>'서럽다'는 `설'</B></FONT><FONT size=2>이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이 `여지승람(輿地勝覽)'이란 문헌에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러운지, 차례(茶禮)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모르겠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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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다음은 </FONT><FONT color=teal size=2><B>'사리다'[愼, 삼가다.]의 `살'</B></FONT><FONT size=2>에서 비롯되었다는 설(說)이다. 각종 세시기(歲時記)들이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한 것도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의 첫 시작을 경거 망동하지 말라는 까닭이다. 옛날 문헌들에 정초에 처음 드는 용(辰)띠날 말(牛)띠날 쥐(子)띠날 돼지(亥)띠날 그리고 2월 초하룻날을 신일(愼日) 로 적혀 있음을 근거로 하여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풀이한 기원설이다. 새해부터 처음 맞이하는 십이일을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이라 하여 여러 가지를 삼가며 조심할 것을 가르친 풍속이 있는 걸 볼 때, 매우 타당한 설(說)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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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설'의 어원에 대해 또 다른 견해는 나이를 댈 때 </FONT><FONT color=teal size=2><B>몇 살(歲)... 하는 '살'</B></FONT><FONT size=2>에서 비롯된 연세설(年歲說)이다. 한국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우랄 알타이어계(語系)에서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살(산스크리트語) · 잘(퉁구스語) · 질(몽고語)'이라 한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돋고 새로 솟는다'는 뜻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하고 있다. 이 모두 정초와 직접 연관되고 있다. 중국의 어원사전인 `청문엽서(淸文葉書)'에 보면 연세를 나타내는 `살'· `잘'은 세(世)· 대(代)· 세(歲)· 수(壽)를 뜻하고, 또 대나무나 풀이나 뼈마디를 뜻하는 절(節)의 어원이라고도 했다. '몇 살 몇 살' 하는 `살'이 그 연세의 매듭(節)을 짓는 정초를 나타내는 `설'로 전화 됐음직하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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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또한 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 </FONT><FONT color=teal size=2><B>'설다. 낯설다' 의 '설</B></FONT><FONT size=2>'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설(說)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문화적 시간의 충격이 강하여서 '설다'의 의미로,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정착되었다. 곧 묵은해에서부터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에 있는 다소 익숙치 못하고 낯설은 단계라는 의미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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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따라서 설은 동지로부터 시작하는 마무리 시기에서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새 시작의 설날을 정점으로 하여, 그리고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과 정월 대보름의 대단원까지를 한 선 상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BR></FONT></LI></UL>
<P><A name="설 - 동지와 설날과 대보름"><FONT color=green><B><I><BR></I></B></FONT></A><A name="설 - 동지와 설날과 대보름"><FONT color=green><B><I><U><설 - 동지와 설날과 대보름 </U></I></B></FONT></A><FONT color=green><B><I><U>></U></I></B></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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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동지(冬至, 12월 23일경)</B></FONT><FONT size=2>를 '작은 설[亞歲]'이라 한다. 그래서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였다. 1년 12개월에 십이지(十二支)의 이름을 붙였는데 동지가 드는 음력 11월을 자월(子月), 12월을 축월(丑月), 1월을 인월(寅月)..... 등의 순으로 부르게 된 것도 동지를 세수(歲首)로 쳤던 시대의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태양은 '해'이며, 해는 '낮'이며 '년(年)'이다. 곧 태양을 통해 1년이라는 시간 주기를 인식하였으며, 또한 동지로부터 낮이[해가] 길어지고 태양의 힘이 다시 왕성해지므로, 동지를 1년의 출발로 삼았다. 동지는 태양력에 의한 구분인 24절기의 하나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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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설날[음력 1월 1일]</B></FONT><FONT size=2>은 태음력에 의한 새해의 출발이다. 음력 정월 초하루는 양력으로 동지로부터 두 달이 지난 입춘이 드는 2월에 있다. 정월 초하루는 달이 극도로 이지러진 상태에 다시 커 가는 출발점에 서있는 날이며, 묵은해와 작별을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전환점에 있는 날이다. 달[月]의 삭망(朔望)은 예로부터 사람의 삶과 동식물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므로 달이 없어지면 물리적인 삶이나 정신적 상황이 중지되는 전이기(轉移期)가 된다는 것이다. 설날은 바로 기존 질서에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질서에 통합되기 전까지의 전이기이다. 이 전이·과도기에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삼가 조심하는 여러 의식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설날을 신일 (愼日)이라고 부른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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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대보름[음력 1월 15일]</B></FONT><FONT size=2> 역시 태음력에 의한 것이다. 보름은 설과 반대로 달이 완전히 차 오른 상태이다. 잠복과 죽음의 시기인 그믐과 초승의 전이기를 끝내고, 준비하고 삼가며 적응하는 상십이지일을 통한 후, 활동과 열정의 대 통합기에 접어든다. 이 날이 바로 대보름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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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이상과 같이 우리 민족은 동지를 작은 설로 지냈고, 설도 쇠었고, 설과 상십이지일로 연결되는 대보름도 설 명절의 일환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곧 태양력이 태음력의 종속적인 역법으로 사용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설은 작은 설이던 동지에서부터 정초를 거쳐 설의 대단원인 대보름까지를 보아야 할 것이며, 정월 초하루는 설날로 보아야 할 것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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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동지에서 대보름까지를 설로 잡을 때 통과 의례의 순차적 단계에서 보면, 동지는 묵은해에서 분리(分離)되는 단계이고, 설날은 새해로 옮겨가는 전이(轉移)단계이며, 대보름은 새해에 통합(統合)되는 단계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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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설날의 차례와 성묘 - 설날 아침 일찍 사당이나 대청에 세찬(歲饌)과 세주(歲酒), 떡국 등을 진설하고 조상에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였음을 알리는 차례를 드린다. 차례 다음 세배(歲拜), 음복(飮福)후, 조상 묘를 찾아가 간단한 세찬과 세주를 차려놓고 예를 올리는 것을 성묘(省墓)라 한다. 설 차례는 떡국차례라 하여 떡국을 제수(祭需)로 올리는 것이 상례이며, 그 밖의 제수는 기제사와 마찬가지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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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경북 영일 안동 지방에서는 이날 눈이나 비가 와서 질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속담에 '설은 질어야 하고, 보름은 말라야 한다.'고 하였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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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각 집안마다 차례가 끝나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 뵙고 새해의 축원을 빌고 덕담을 나누는 하례(賀禮)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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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들은 비단 설날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겨울 농한기, 특히 설날부터 시작하여 설의 대단원인 정월 대보름날까지 즐겼다. 우리나라의 많은 민속놀이는 정월 대보름에 즈음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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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제기차기, 윷놀이, 널뛰기, 농악, 연날리기, 탈놀이, 쥐불놀이, 마을 단위의 석전(石戰), 차전놀이, 줄다리기, 횃불 싸움, 별신굿, 지신밟기, 기호지방의 거북놀이, 북청사자놀음, 영남지방의 광대놀이, 동북부 해안지방의 처용 놀이와 동제에 따르는 여러 가지 연희, 상원일 새벽의 계명(鷄鳴)점, 보리싹 점, 부럼 깨기, 그날 저녁의 달맞이와 달집 태우기, 액연 태우기 등의 공동오락을 즐기는데 이는 일가 친척과 동민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며 또한 각 개인과 가정, 마을 공동체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축원의례이다. 나아가 집약적 노동을 요구하는 농경 사회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의 협동 체계를 유지하려는 사회적 목적이 이러한 공동 놀이 속에 있었다.
<IMG height=71 hspace=3 src="http://kr.img.blog.yahoo.com/ybi/1/cd/c8/ownerhss/folder/17/img_17_171_0?1104527393.gif" width=100 align=right vspace=3 border=0><BR></FONT><FONT size=3></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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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A name="정월 설의 여러 세시 민속관행"><FONT color=green size=3><B><BR><</B></FONT></A><A name="정월 설의 여러 세시 민속관행"><FONT color=green><B><I><U>정월 설의 여러 세시 민속관행</U></I></B></FONT></A><FONT color=green><B><I><U> >
<IMG height=54 hspace=3 src="http://kr.img.blog.yahoo.com/ybi/1/cd/c8/ownerhss/folder/17/img_17_170_0?1104527363.gif" width=44 align=left vspace=3 border=0><BR></U></I></B></FONT></DT></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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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FONT size=2>정월은 농한기이지만 새해를 시작하는 달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간의 창조를 위한 신성의례와 건강하고 풍요로운 새생활을 얻기 위한 여러 가지 축원, 점세의 의례를 행하는 시기이다. </FONT></DT></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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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size=2>정월의 제의력(祭儀歷) - 1월 1일 설날, 1월 7일 인날[人日], 1월 8일의 곡식날, 정월 십이지일, 동제, 상원[대보름날], 귀신단지날 등이 있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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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인날(정월 7일)</B></FONT><FONT size=2> - 인날은《동국세시기》의 기록을 보아도 중국 전래의 세시로서 주로 조선왕조의 궁중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사람의 생(生)을 축하하며, 잡 귀신을 막아 한 해의 질병을 예방하고 해충을 구제하는 날로 믿고 있다. 경북일원에서는 이 날 가족의 나이 수만큼 쌀을 내어 떡을 해 먹으면 일 년 동안 무병하다고 믿는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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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곡식날(정월 8일)</B></FONT><FONT size=2>은 풍작을 축원하고 점치는 날로 알려져 있다. 이 날 오곡을 볶아 먹으면 그 해 곡식이 좀 치지 않고, 떡을 해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안동지방에서는 저녁에 국수를 섞은 수제비를 끓여 먹는다. 수제비는 열매, 국수는 덩굴을 의미하는 것으로 빨리 익을수록 그 해 농사를 빨리 짓는다고 한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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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A href="http://premium44.daum.net/Mail-bin/기념일1.htm#상십이지일"><FONT color=green size=2><B>상십이지일</B></FONT></A><FONT size=2>은 설날에서부터 열 이튿날까지의 일진(日辰)에 의해서 연초의 주기적인 점세, 제액(除厄), 기복(祈福)의 의례행위들이 관행되는 날이다. 곧 털 있는 짐승[쥐, 소, 토끼 등]의 날은 유모일(有毛日), 털 없는 짐승[뱀, 용]의 날은 무모일(無毛日)로 나누어 그날 마다 심한 금기가 따랐으며, 마침 설날이 유모일일 때는 풍년이 들며, 무모일일 때는 흉년이 든다고 전한다. 오늘날은 전통적 유습을 지켜지는 바가 있지만 약화되거나 소멸된 느낌이 든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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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동제(洞祭) - 정월 3, 4일</B></FONT><FONT size=2>에서 정월 대보름에 이르는 사이에 대부분의 마을들은 동제를 지낸다. 이는 농사의 풍요와 마을의 평안과 각 가정의 평안과 건강 등을 위함이지만 내용 및 풍속은 지방마다 차이가 있다. 또한, 제일(祭日)도 대부분 정월 보름날로 하지만 지방마다 다르고, 횟수도 다르다. 정월 동제는 축원과 점세의례, 유월보름 동제는 밭작물 수확의례, 상달 길일(吉日)의 동제는 벼농사의 수확의례와 관계 깊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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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정월 대보름날</B></FONT><FONT size=2>은 설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날로서 우리의 민속 중 가장 많은 민속놀이가 집중된 날이다. </FONT></L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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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ONT color=green size=2><B>귀신 단지일(16일)</B></FONT><FONT size=2>은 집안에 귀신이 내왕하는 날이다. 이 날에는 출입하는 귀신을 막아 그 해의 액을 방지하고 풍년과 평안의 복을 기원하는 여러 행사가 관행되는데, 특히 마을 단위의 동제(洞祭)와 '지신밟기' 행사를 한다. <BR></FONT><BR><BR></LI></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