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은 아프지만 한번 생각해볼만 하다 싶어서,...소개.
박창홍(15)
작성일
05-01-27 10:32 9,435회
2건
본문
우리 안의 천민자본주의
물 마시고 이빨 쑤시고 싶은 노동자들
‘대한민국 사교육비 총비용이 30조원’이라는 결과가 향후 한국 노동운동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에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진보논객들은 공교육을 강화하라고 입만 벌리면 떠든다. 노무현정부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헐, 내가 보기엔 틀렸다. 경복궁 무너져도 대통령 탓이냐? 문화연구 다시 해라.
30조원인지 13조원인지 하여튼 엄청난 가계부담의 요인인 천문학적인 사교육비가 왜 한국 노동운동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가?
한국 노동운동의 전망이 밝다고 말하려면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상당 부분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은 지금처럼 민주노동당이 겨우 원내에 진입하여 초미니 소수정당 노릇을 하는 수준으로 만족하는 정도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한국 정치의 중심적 의제로 설정될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것이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건 왜 그런가?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높다. 그런데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 학구열이 드높은 사회라는 말과는 다르다. 이 나라는 엄밀히 말하면 ‘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그런데 그 ‘부모의 교육열’이라는 것은 ‘노동에서 멀어지고 싶은 욕망’과 다를 바가 없다. 즉, 한국사회의 교육열이 드높다는 것은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누가 힘든 일 하고 싶겠는가? 또 ‘노동을 한다는 것은 빈곤의 증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교육열은 그 어떤 사회보다도 강렬하고 그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대학진학률 85%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락하고 안일한 생활을 추구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모두 노동자의 자녀들이다. ‘땀’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남의 자식의 몫일 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자식만은 유한계급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대학을 나왔다고 유한계급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노동을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노동계에 만연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노동계뿐만이 아니라 진보적인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들을 조그만 공장에서 위험한 일 하도록 방치하는 진보적인 학자가 있을까? 물론 그 일은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입으로는 언제나 그 노동을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이 진보적인 학자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 위험한 일을 내 아들이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보적인 지식인의 아들이 노가다 뛴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가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입으로만 진보를 말하는 진보적인 지식인’을 믿지 않는다. 지식인과 노동자와의 이 같은 괴리는 비대중적인 정밀한 이론으로 통념과 맞서 싸우려는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는 항상 불리한 조건이다.
진보적 지식인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스스로는 노동자 계급의 일원이 되는 것을 꺼려하면서 입으로만 진보를 말하는 지식인의 이중성에 의해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모든 노동자들이 소위 ‘고상한 것’을 추구한다. 고급문화라는 것을 동경한다. 천박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일터와 먼지에 뒤덮인 시커먼 얼굴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노동자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그 위치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거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자영업자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로또 복권이 그토록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노동자들 가운데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에서 현실을 개선하면서 굳세게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은 그 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허상을 쫒고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
우리 아들만은 ‘서울대’에 꼭 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 노동자가 아마 수백만 명쯤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동자의 아들 가운데 서울대 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세어 보지 않았지만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 아닌가? 그래도 그 허망한 꿈을 따라 가는 노동자는 부지기수다.
노동자들이 고상하다는 부자들의 문화를 동경하는 모습은 피아노 학원에 애들이 꽉꽉 차 있는 모습에서 또한 발견된다. 대한민국, 이 좁은 나라에 웬 놈의 피아니스트들이 그토록 필요한지.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고상한 거 쫓다가 이 나라에서 잘 안되니까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다. 외국 나가면 고상해지는 건지는 안 나가봐서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입만 벌리면 하루 30명씩 자살한다고 말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한다. 물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하루 30명씩 자살하는 이 상황이 또한 민주노동당의 치명적인 미래를 암시해주고 있다는 것쯤은 빨리 깨달을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가? 점잖은 태도에 익숙한 사람들, 노동을 천시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사업하다 부도나면 자살하는 거다. 노동을 매우 부끄러워하는 사회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무슨 일이라도 해서 살겠다는 자기 보존 본능을 포기하는 거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점잖은 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장갑 끼고 현장에서 일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에 무언가를 생산하는 노동이라는 것이 불명예스럽고 무가치하고 수치스러운 빈곤의 증거라는 공식이 통용되고, 그 공식을 노동자들마저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이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증거인데 이놈의 인식이 야만인 시대부터 시작해서 물 마시고 이빨 쑤시는 선비근성, 사농공상 따지는 관념으로 한국사회의 뼛속까지 각인 된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문화연구가라는 진보적 지식인이 인터넷에서 전투적 글쓰기를 좀 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화연구를 한다면서 남 탓만 하며, 노무현 대통령 탓만 하며 왜 이런 퇴영적인 노동자 문화에는 관심이 없을까?
기아 광주공장 노조간부도 물 마시고 이빨 쑤시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고향이나 어디 가서 단순한 현장 노동자가 아닌 노조 지도자 됐네 하고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출처:
“그래서 꿈은 꿈, 그래도 꿈은 꿈” ⓒ 엠파스 이미지 검색
“진짜 지식인 은수미 박사” ⓒ 데일리서프 신아령 기자
ⓒ 피투성이
물 마시고 이빨 쑤시고 싶은 노동자들
‘대한민국 사교육비 총비용이 30조원’이라는 결과가 향후 한국 노동운동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에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진보논객들은 공교육을 강화하라고 입만 벌리면 떠든다. 노무현정부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헐, 내가 보기엔 틀렸다. 경복궁 무너져도 대통령 탓이냐? 문화연구 다시 해라.
30조원인지 13조원인지 하여튼 엄청난 가계부담의 요인인 천문학적인 사교육비가 왜 한국 노동운동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가?
한국 노동운동의 전망이 밝다고 말하려면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상당 부분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은 지금처럼 민주노동당이 겨우 원내에 진입하여 초미니 소수정당 노릇을 하는 수준으로 만족하는 정도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한국 정치의 중심적 의제로 설정될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것이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건 왜 그런가?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높다. 그런데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 학구열이 드높은 사회라는 말과는 다르다. 이 나라는 엄밀히 말하면 ‘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그런데 그 ‘부모의 교육열’이라는 것은 ‘노동에서 멀어지고 싶은 욕망’과 다를 바가 없다. 즉, 한국사회의 교육열이 드높다는 것은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누가 힘든 일 하고 싶겠는가? 또 ‘노동을 한다는 것은 빈곤의 증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교육열은 그 어떤 사회보다도 강렬하고 그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대학진학률 85%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락하고 안일한 생활을 추구하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모두 노동자의 자녀들이다. ‘땀’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남의 자식의 몫일 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자식만은 유한계급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대학을 나왔다고 유한계급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노동을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노동계에 만연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노동계뿐만이 아니라 진보적인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들을 조그만 공장에서 위험한 일 하도록 방치하는 진보적인 학자가 있을까? 물론 그 일은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입으로는 언제나 그 노동을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이 진보적인 학자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 위험한 일을 내 아들이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보적인 지식인의 아들이 노가다 뛴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가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입으로만 진보를 말하는 진보적인 지식인’을 믿지 않는다. 지식인과 노동자와의 이 같은 괴리는 비대중적인 정밀한 이론으로 통념과 맞서 싸우려는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는 항상 불리한 조건이다.
진보적 지식인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스스로는 노동자 계급의 일원이 되는 것을 꺼려하면서 입으로만 진보를 말하는 지식인의 이중성에 의해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모든 노동자들이 소위 ‘고상한 것’을 추구한다. 고급문화라는 것을 동경한다. 천박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일터와 먼지에 뒤덮인 시커먼 얼굴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노동자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그 위치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거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자영업자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로또 복권이 그토록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노동자들 가운데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에서 현실을 개선하면서 굳세게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은 그 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허상을 쫒고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
우리 아들만은 ‘서울대’에 꼭 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 노동자가 아마 수백만 명쯤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동자의 아들 가운데 서울대 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세어 보지 않았지만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 아닌가? 그래도 그 허망한 꿈을 따라 가는 노동자는 부지기수다.
노동자들이 고상하다는 부자들의 문화를 동경하는 모습은 피아노 학원에 애들이 꽉꽉 차 있는 모습에서 또한 발견된다. 대한민국, 이 좁은 나라에 웬 놈의 피아니스트들이 그토록 필요한지.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고상한 거 쫓다가 이 나라에서 잘 안되니까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다. 외국 나가면 고상해지는 건지는 안 나가봐서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입만 벌리면 하루 30명씩 자살한다고 말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한다. 물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하루 30명씩 자살하는 이 상황이 또한 민주노동당의 치명적인 미래를 암시해주고 있다는 것쯤은 빨리 깨달을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가? 점잖은 태도에 익숙한 사람들, 노동을 천시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사업하다 부도나면 자살하는 거다. 노동을 매우 부끄러워하는 사회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무슨 일이라도 해서 살겠다는 자기 보존 본능을 포기하는 거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점잖은 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장갑 끼고 현장에서 일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에 무언가를 생산하는 노동이라는 것이 불명예스럽고 무가치하고 수치스러운 빈곤의 증거라는 공식이 통용되고, 그 공식을 노동자들마저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이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증거인데 이놈의 인식이 야만인 시대부터 시작해서 물 마시고 이빨 쑤시는 선비근성, 사농공상 따지는 관념으로 한국사회의 뼛속까지 각인 된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문화연구가라는 진보적 지식인이 인터넷에서 전투적 글쓰기를 좀 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화연구를 한다면서 남 탓만 하며, 노무현 대통령 탓만 하며 왜 이런 퇴영적인 노동자 문화에는 관심이 없을까?
기아 광주공장 노조간부도 물 마시고 이빨 쑤시기 위해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고향이나 어디 가서 단순한 현장 노동자가 아닌 노조 지도자 됐네 하고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출처:
“그래서 꿈은 꿈, 그래도 꿈은 꿈” ⓒ 엠파스 이미지 검색
“진짜 지식인 은수미 박사” ⓒ 데일리서프 신아령 기자
ⓒ 피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