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판 ‘친일 언론인’의 말로...
박창홍(15)
작성일
05-01-27 09:44 9,7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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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친일 언론인’의 말로...
"우리의 모든 과거의 불행은 반역을 처벌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오늘 또 다시 처벌하지 않는다면, 주모자들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커다란 위험이 닥칠 것이다. 어제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곧 내일의 죄를 부추기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서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거울이다. 프랑스는 나치 점령의 부역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숙청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는 1944년 8월 나치에서 해방된 후 곧 과거 청산에 들어가 약 2년 간에 걸쳐 조국을 배반하고 나치에 협력한 1만여 명의 부역자들을 처형했다.
프랑스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가혹하게 처벌했는가. 그것은 지난날의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으며, 올바른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이뤄진 지성인 숙청을 다룬 '지식인의 죄와 벌'(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기언 옮김. 두레)이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은 신문이나 일기, 회고록, 재판 기록 등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프랑스의 지성인 숙청의 실상을 정리하고 있다.
도서전문 월간 '리르'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전기 작가로도 유명한 저자가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탓에 일방적으로 숙청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과거청산문제를 놓고, 특히 나치에 부역한 지식인들의 숙청 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는 것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2월까지 약 반년에 걸쳐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과 카뮈가 벌인 치열한 논쟁이다.
전형적인 가톨릭 신자이며 부르주아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모리악은 저항운동을 펼친 지하신문 '프랑스 문예'에 카뮈, 사르트르, 아라공 등과 함께 참여했음에도, 프랑스 전통 우익을 대변하는 '르 피가로'지의 논설을 통해 숙청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국민화합을 위해 그리스도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카뮈는 해방을 맞을 때까지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어온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하신문이었던 '투쟁'지를 통해 모리악의 이러한 자비론을 강력히 비판하며 응수했다.
"나는 증오에 대해 조금의 애착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반역자를 사랑할 줄 아는 모리악을 존경하지만, 시민으로서의 나는 모리악을 불쌍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반역자와 졸개들의 나라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회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를 좌절시키는 자비를 거절할 것이다."
프랑스의 보수적 지식인들이 숙청에 반대한 데는 기독교인들의 자비론이나 국민들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말고도 지식인들이 특히 가혹하게 처벌당하고 있는데 대한 동정과 저항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경제인 등 다른 분야의 부역자들보다 문인이나 언론인, 출판인 등 지식인들이 더 엄중하게 처벌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가혹하리 만큼 지식인들을 중벌로 다스린 것은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컸고, 부역행위가 인쇄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 증거확보가 수월한 등 무엇보다 기소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인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지식인 사회나 일반 국민의 지배적인 여론도 한몫 했다. 지식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각과 신념을 퍼뜨리고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처벌은 지식인들에게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며, 글쓰기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정의를 주장하지 못할 망정 자기 신념에 반하는 글을 쓰도록 압력을 받았을 때 지식인이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은 '침묵'이라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사르트르는 이를 두고 "작가는 그가 무엇을 하든 '현장'에 있고, 심지어 첩첩 산중에 들어가 있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으며,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작가는 누구든지 자기 시대의 '장터'에 참여해 있다. 심지어 작가의 침묵조차도 하나의 입장표명이고 정치행위이며, 지식인으로서의 참여의 표시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상적 관점에서 프랑스의 지식인 숙청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고의든 아니든 숙청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점에서 보면 숙청은 목표라기보다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또 점령의 실제 사실에 입각해 부역자들을 재판했더라면, 혁명적 열기 속에서 진행된 재판으로 인한 불공정한 심판, 비슷한 죄과에 대한 법원간의 형량의 차이 같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256쪽. 1만2천800원. (서한기 기자)
ⓒ 데일리서프라이즈
"우리의 모든 과거의 불행은 반역을 처벌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오늘 또 다시 처벌하지 않는다면, 주모자들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커다란 위험이 닥칠 것이다. 어제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곧 내일의 죄를 부추기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서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거울이다. 프랑스는 나치 점령의 부역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숙청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는 1944년 8월 나치에서 해방된 후 곧 과거 청산에 들어가 약 2년 간에 걸쳐 조국을 배반하고 나치에 협력한 1만여 명의 부역자들을 처형했다.
프랑스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가혹하게 처벌했는가. 그것은 지난날의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으며, 올바른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이뤄진 지성인 숙청을 다룬 '지식인의 죄와 벌'(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기언 옮김. 두레)이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은 신문이나 일기, 회고록, 재판 기록 등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프랑스의 지성인 숙청의 실상을 정리하고 있다.
도서전문 월간 '리르'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전기 작가로도 유명한 저자가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탓에 일방적으로 숙청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과거청산문제를 놓고, 특히 나치에 부역한 지식인들의 숙청 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는 것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2월까지 약 반년에 걸쳐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과 카뮈가 벌인 치열한 논쟁이다.
전형적인 가톨릭 신자이며 부르주아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모리악은 저항운동을 펼친 지하신문 '프랑스 문예'에 카뮈, 사르트르, 아라공 등과 함께 참여했음에도, 프랑스 전통 우익을 대변하는 '르 피가로'지의 논설을 통해 숙청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국민화합을 위해 그리스도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카뮈는 해방을 맞을 때까지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어온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하신문이었던 '투쟁'지를 통해 모리악의 이러한 자비론을 강력히 비판하며 응수했다.
"나는 증오에 대해 조금의 애착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반역자를 사랑할 줄 아는 모리악을 존경하지만, 시민으로서의 나는 모리악을 불쌍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반역자와 졸개들의 나라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회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를 좌절시키는 자비를 거절할 것이다."
프랑스의 보수적 지식인들이 숙청에 반대한 데는 기독교인들의 자비론이나 국민들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말고도 지식인들이 특히 가혹하게 처벌당하고 있는데 대한 동정과 저항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경제인 등 다른 분야의 부역자들보다 문인이나 언론인, 출판인 등 지식인들이 더 엄중하게 처벌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가혹하리 만큼 지식인들을 중벌로 다스린 것은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컸고, 부역행위가 인쇄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 증거확보가 수월한 등 무엇보다 기소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인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지식인 사회나 일반 국민의 지배적인 여론도 한몫 했다. 지식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각과 신념을 퍼뜨리고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처벌은 지식인들에게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며, 글쓰기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정의를 주장하지 못할 망정 자기 신념에 반하는 글을 쓰도록 압력을 받았을 때 지식인이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은 '침묵'이라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사르트르는 이를 두고 "작가는 그가 무엇을 하든 '현장'에 있고, 심지어 첩첩 산중에 들어가 있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으며,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작가는 누구든지 자기 시대의 '장터'에 참여해 있다. 심지어 작가의 침묵조차도 하나의 입장표명이고 정치행위이며, 지식인으로서의 참여의 표시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상적 관점에서 프랑스의 지식인 숙청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고의든 아니든 숙청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점에서 보면 숙청은 목표라기보다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또 점령의 실제 사실에 입각해 부역자들을 재판했더라면, 혁명적 열기 속에서 진행된 재판으로 인한 불공정한 심판, 비슷한 죄과에 대한 법원간의 형량의 차이 같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256쪽. 1만2천800원. (서한기 기자)
ⓒ 데일리서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