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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규... 미안

이상구(15) 작성일 05-01-28 12:00 11,061회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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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와 야합하는 ‘국가주의’ NGO의 허상인가? 
홍성주 ´의료와 사회포럼´ 정책위원장 
2005-01-27 09:42:15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고수를 주장하는 참여연대를 비판함-

얼마 전 요양기관 ‘계약지정제’를 정부가 추진 중이라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계약지정제란 건강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기관을 정부가 강제로 지정하지 않고 민간의료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지정하는 보험제도를 말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가 나서서 극력반대 입장을 밝혔다. 참여연대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건강보험 붕괴시키는 방안>이라는 제하의 논평에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강제지정제)는 보험수가제와 함께 건강보험의 골간을 이루는 제도로서 이를 폐지하는 것은 공적 건강보험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참여연대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강제지정제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의료보험(건강보험)제도의 ‘앙시앙 레짐’으로 군림해 온 것으로, 가급적 빨리 폐지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강제지정제는 전국민의료보험 달성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위해 국민과 의사의 의료생활세계를 억압적으로 지배해 온 ‘전근대’의 상징이었다. 전국민보험을 달성하고 20년이 흐른 지금, 요양기관 계약제로의 전환은 오늘날 건강보험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의 실타래를 푸는, 진정한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강제지정제의 불가피성을 수긍하는 입장인 사람들조차도, 강제지정제를 ‘언젠가는’ 폐지되어야 할 제도로 대부분 인식해 왔다. 대표적으로 논평에서 참여연대가 인용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입장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가 이번에 폐지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강제지정제의 한시적 ‘불가피성’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발전을 위해서는 강제지정제가 중요한 근간이 되는 좋은 제도인 것처럼 주장을 편 것은 문제가 있다. 이제부터 이것에 대해서 알아보고 우리나라 NGO의 문제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1. 헌재는 강제지정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보았다

참여연대는 “헌재도 인정한 제도의 필요성을 망각한 보건복지부”라고 하여 헌법재판소의 강제지정제 합헌결정을 근거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의 입장은 ‘강제지정제 고수’ 입장과는 다르다. 2002년 10월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의 입장은 참여연대가 이 결정을 이유로 정부의 입장을 성토하는 것과는 배치된다. 오히려 헌재의 입장은, 신문보도처럼 정부가 계약지정제를 검토하고 있다면, 그러한 정부입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결정문에 의하면, 헌재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가 의료인의 직업의 자유, 의료소비자의 자기결정권 및 평등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공공의료시설이 부족한 우리 실정에 비추어 강제지정제가 아닌 계약지정제로는 국민의 의료보장이라는 공익을 실현할 수 없다는 “입법자(정부)의 현실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최소침해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허용될 수 있으며 합헌적이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러한 헌재의 입장은 따라서 강제지정제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고 ‘조건부적’이며, 동시에 정부의 정책적 판단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는데 있다. 이러한 사정은 헌재결정의 ‘단서조항’인 결정요지 7항에서 잘 드러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강제지정제가 의료인의 기본권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제도라는 점을 깊게 인식하여 장기적 안목에서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거나 보험급여율을 높이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민간의료기관이 의료보험체계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반대의견>을 낸 2명의 재판관의 반대이유를 보면 헌재의 합헌결정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 다수의견은 충분한 숫자의 공공의료시설이 확보될 때까지는 강제지정제를 채택해야 하고 장차 공공의료시설이 충분히 확보되면 그때 가서 계약지정제를 채택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먼저 공공의료시설의 확충에 힘을 쏟아야 하고 그러면서 단계적으로 그 정도에 맞추어 의료보험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였어야 할 것이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일의 순서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즉, 강제지정제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공공의료기관이 매우 취약한 우리 실정’에서 요양기관지정을 법으로 강제한 정부의 정책판단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연대가 밝힌 ‘헌재가 인정한 강제지정제도의 필요성’이란, 정부의 정책판단에 근거한 조건부적인 불가피성을 말하는 것이지, 이 제도의 장점이나 항구적인 필요성(제도적 우월성)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 정부가 어떤 이유에서 이 제도를 폐지하기로 한다고 할 때 헌재의 결정이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 단서조항처럼, 헌재는 민간의료기관이 공적보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계약지정제)이 조성되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는 소수의견은, 합헌판결의 이유가 된 <공공의료시설이 부족한 현실>과 강제지정제도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

2 강제지정제는 모든 한국의료문제의 근원이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헌재 결정문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의료보험 제도이다. 헌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우리 의료보험제도는 법률에 자격이 정해진 자가 보험료를 낼 것을 전제로 하여 보험급여를 하는 사회보험방식을 택하고 있다. 소득재분배와 위험분산의 효과를 거두려는 사회보험의 목표는 임의가입의 형식으로 운영하는 한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피보험자에게 가입의무를 강제로 부과하는 것은 의료보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적합하고도 필요한 조치로써, 이로 인한 피보험자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은 원칙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런데 우리 의료보험제도는 피보험자인 국민뿐이 아니라 의료공급자도 또한 의료보험체계에 강제로 동원하고 있다. 사회보험의 강제성은 피보험자의 강제가입에 관한 것이므로, 요양기관의 ‘강제지정제’는 사회보험의 본질적 구성요소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보험방식을 취하는 선진 외국의 의료보장 운영실태를 살펴보더라도, 요양기관을 강제로 지정하는 제도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모든 국가가 보험자 또는 국가와의 계약을 통하여 보험의(保險醫)를 확보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의료보장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의료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정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 국가가 생활여력이 없는 극빈층이나 노년층을 책임지는 의료보호제도만 운영하고 나머지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형태가 있고(미국), 위 헌재 결정문에 잘 요약된 사회보험 방식이 있으며(일본 독일 프랑스), 마지막으로 영국과 같이 국가가 세금으로 모든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가 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사회주의 의료’가 있는데, 앞의 3가지 자본주의 의료 보장체계와 사회주의 의료시스템간의 중요한 차이점은 ‘의료시장’의 허용여부에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사회보험 방식이면서도 매우 예외적인 특징으로 강제지정제도를 두고 있다. 즉, 민간이든 국공립이든 상관없이 대한민국에 세워진 모든 의료기관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보험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되어 정부가 정해주는 가격(보험수가)으로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의무화 된다. 참여연대가 건강보험의 ‘골간’을 이루는 제도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것이지, 전국민의료보험을 시행하는 나라들의 보편적인 보험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강제지정과 국가에 의한 가격결정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자본주의 의료체계이면서도 정상적인 ‘시장원리’가 작동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의료왜곡과 파행구조를 심화시켜 왔다. 공공의료시설이 부족하고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낮은 것도 이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한다.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한 다른 나라들에서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소비는, ‘보험시장’이라는 정부가 개입한 시장구조 속에서 일어난다. 소비자(국민)와 보험공급자(공단과 민간보험자), 그리고 생산자(의료공급자) 등 시장참여자들간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소비자는 보험자와 의사를 선택할 수 있고, 보험자는 의료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의사는 보험자를 선택한다. 이 결과 보험공급자와 의사들 내부에서는 소비자의 소비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국가는 자신도 시장에서 경쟁을 하면서 가장 큰 보험공급자로서 보험시장을 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의료에 대한 국가의 ‘시장개입’인데, 이러한 개입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허용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건강보험 하에서는 상호 선택의 자유가 없고 소비자의 다양한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비자는 보험자와 생산자를 선택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 단 하나의 공보험자 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는 이 ‘독점보험자’가 제공하는 보험상품만을 구매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양질의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민간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생산시설확보와 공정질서를 위한 재정투입 등 시장에 개입한다기 보다는 ‘맨주먹으로’ 단지 시장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한다. 보험관리조직(공단)은 관료화되고 비효율성이 증가한다. 의료생산자는 정부와 강제계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보험자가 재정절감을 이유로 생산원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을 제시해도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의료생산자들은 생존을 위해 온갖 편법과 비보험 분야에 의존한다. 보험분야에서는 ‘허준’을 능가하는 희생정신을 발휘하지만, 비보험과 부대서비스 분야에서는 수전노가 되기 쉽다. 약할증 시장같은 <사이비 유사(類似)시장>이 형성된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 유사시장의 폐해를 직간접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국의료가 ‘자본논리’에 의해 너무 ‘상품화’되고 ‘자유방임적’이며 ‘이윤’만 추구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시장이 범인은 아니다. 비보험 분야의 서비스가 기형적으로 커지고 진료 과별, 의료행위별 공급기반이 왜곡된다. 한편 의사들 역시 서비스의 질을 놓고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결국, 경쟁은 없고 독점만 있는, 시장원리가 전혀 작동되지 않는 보험방식이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인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최대 피해자는 소비자인 국민이다. 문제의 근원은 강제지정제도와 의료에 대한 정부의 독점과 지배에 있지만, 국민들이 이것을 ‘느끼는’ 것은 의사의 진료를 통해서이기 때문에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은 갈수록 심화된다.

이와 같이 한국의료의 온갖 파행은 ‘강제지정제’라는 한국 의료보험의 태생적 한계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최단시일내 전국민의료보험의 달성을 목표로 했던 권위주의 시대의 전근대적 <의료보장 레짐>이 문제였다. 그것은 소기의 목표를 이룬 뒤(89년 전국민의료보험 달성)에도 ‘정상화’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번 세워진 강제의 레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고해져 갔다. 지금은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이 영국의 국영 NHS처럼 될 수도 있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3. 전근대와 야합하는 ‘국가주의’ NGO의 허상

그렇다면, 참여연대의 <강제지정제 고수> 입장은, 어떤 배경과 의도가 있는 것일까? 시민단체의 본질적 특성상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강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민단체는 강제의 고수를 주장하는 것일까?

이는 위에서 말한 착시현상과 관련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NGO들은 흔히 ‘공공성강화’ 개혁을 주창하지만, 기존 건강보험의 틀 자체는 국민의 ‘평등한’ 의료수혜권 차원에서 더없이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자 혹은 의료 평등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바람직한 제도로 보인다. 모든 국민이 누구나 똑같은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질적인 측면에서는 반쪽짜리 보장에 불과하지만 모든 국민은 평등한 것이다. 그리고 이 평등의 비결은 참여연대가 ‘골간’이라고 한 강제지정제와 보험수가제(정부에 의한 가격결정과 통제)에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이 ‘두 기둥’을 강하게 부여잡고서 여기에 반쪽짜리 평등을 개선시키기 위한 보장성과 공공성을 주장한다. 그러면 영국식 NHS에 버금가는 ‘사회주의화’된 의료보장체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의료평등의 ‘형식’은 갖춰졌지만 내용물이 아직 ‘반절밖에 안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위해 <공공성 강화>와 <정부의 개입확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의 골간 형식을 건드릴 수 있는 정부의 정책기조들, 예를 들어 의료시장개방, 경제특구내 내국인진료허용, 민간보험도입, 계약지정제 검토, 수가계약제 개선 등에 대해서는, 그것이 입밖에 나오기만 해도 ‘단죄’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이루려고 하는 목표들(공공성, 보장성)이 사실은 그들이 강하게 붙잡고 있는 기둥인 강제지정제와 정부에 의한 가격결정구조라는 건강보험 ‘틀’ 때문에 파생된 문제라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NGO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강변할 것이다. 한국의료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 의료시장의 ‘자유방임’과 공급자의 ‘부도덕성’ 때문에 비롯된다는 그들의 인식은, 그들이 대개 과거 사회주의 변혁운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전제’로 이미 확고하게 세워져 있는 것이다.

자유방임이나 부도덕성이 ‘시장’ 탓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공공성 보장성 문제> 역시 원인과 결과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원인은 강제지정제와 정부에 의한 수가결정이고, 그 결과는 의료기관의 민간편중, 낮은 보장성이다. 원인은 우리나라에만 있고 결과 역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두드러진 현상이다.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는 헌재 소수의견은 강제지정제의 문제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전국민의료보험을 발전시켜 온 대부분의 나라들이, 30년 혹은 100년에 걸친 의료보장 제도의 완성과정에서 우리처럼 ‘민간 사기업’을 정부가 강제로 동원한 적은 없었다. 긴 시간동안 정부가 공적보험 운영에 필요한 의료시설을 구축하면서 추진했다. 그러나 우리는 10년만에 전국민보험을 달성해야만 했다. 편법이지만 강제지정제라는 강력한 경제외적 수단이 동원되었다. 그 결과, 의료보험 도입당시인 77년만 해도 53.2%였던 공공병상은 강제지정보험 도입이후 불과 20년만에 오늘날 수준인 15%로 떨어졌다. 의료수요 증가에 따라 증가하는 민간의료시설을 얼마든지 요양기관으로 강제지정 할 수 있었던 정부는 시설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다. 공공/민간비율의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전국민보험은 최단시일내 이룰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의료공급구조의 극심한 민간 편중이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자유방임 시장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강제지정으로 시장을 유린한 결과였다. ‘정부실패’였던 것이다.

그리고 강제지정과 가격통제를 수단으로 확대 실시된 전국민보험이 반쪽짜리 ‘진료비 할인제도’로 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치료서비스 중심의 ‘저급여’ 체계는 전국민보험이 완성된 이후 지난 20년동안 ‘반절짜리’ 보장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본 적이 없다. 공공비중도 계속 떨어지기만 했지 바닥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말하자면, 강제지정과 가격통제는 건강보험의 운영자인 정부로 하여금 <반토막 급여서비스>와 전체 병상 중 겨우 <15%의 소유병상 ‘주식’>만을 갖고도 지난 20년동안 무소불위의 ‘독점적 지위와 권한’을 누려온 비결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독점과 전횡이 ‘정부’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든가, 혹은 국가의 독점은 원래 의료같은 공공분야(?)에서는 당연한 것인데 정부당국자의 국정철학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이것을 두고 ‘국가주의’ 혹은 ‘국가사회주의’ 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과거 사회변혁운동의 유습된 관념(평등)을 개혁의 ‘전제’로 세워놓고 우리사회의 건강문제, 의료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참여연대 등 일부 NGO들이 한국의료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현실과 괴리된 이데올로기적 경향성(傾向性)에 빠져있는가를 설명해준다. 공공성 강화 등 시민단체가 주창하는 의료정책들이 대부분 구체적인 정책대안이기보다는, 대개는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에 맞는 ‘정치슬로건’에 불과한 사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강제지정제를 폐지하면 건강보험이 붕괴된다’ ‘민간보험을 허용하면 공보험이 무너진다’ ‘의료시장을 개방하면 민간보험이나 강제지정의 예외를 허용하여 건강보험이 붕괴되고 의료이용의 양극화가 일어난다’ 등등의 주장의 결론은 언제나 ‘가난한 서민들만 죽어난다’ ‘국민의 의료 평등성을 훼손한다’이다. 지독한 의료 쇄국주의이자 의료 평등주의 정치슬로건인 것이다.

‘분배와 평등’을 강조하는 정책이데올로기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하지 않고, 발딛고 서있는 현실에 대한 실사구시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그렇다. 그러나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의 평등 이데올로기는 이런 점에서 좀 회의적이다. 의료평등을 위해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희생시킬 수도 있고, 한국의료가 국제적 수준에 미달하여 고립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를 곧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을 외치지만 그것은 전근대의 상징인 권위주의 체제의 ‘국가주의’를 부활시킨다. 지난 30년동안 국가에 의한 의료지배의 상징인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참여연대가 선호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강제’의 한시적 불가피성이라면 모르되, 제도적 우월성을 강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그것은 헌재의 결정취지에도 어긋나며 자유의 원칙과 양립하기도 어렵게 된다. 참여연대는 ‘당연지정제’라는 말을 쓰고 있으나, 그것은 의료공급자를 ‘강제’하고 소비자인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기본 골조가 이렇게 짜여지고 구축될 때 이 위에 축성되는 포괄수가제니 총액계약제니 주치의등록제니 하는 모든 의료제도들에서 ‘자유와 선택’은 아예 발붙일 틈이 없어지고 오직 ‘강제와 의무’만 남게 된다. ‘의무와 강제’로만 운영되는 제도는 현대 민주국가의 민주주의 제도라고 할 수 없다. 사회주의 전체주의 제도인 것이다.

4. 결 어

시민단체 연구가들은 “한국의 시민운동이 여전히 계몽과 동원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사회운동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도 과거 사회변혁운동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강제지정제도를 골간으로 하는 건강보험이 의료에 대한 전일적 체계로서 영국식 NHS와 ‘형식적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에 주목한 나머지, 그것이 한국 의료역사 속에서 무엇을 의미해 왔는지, 왜 NHS에는 있는 ‘자유’가 건강보험에는 없는지, 참여연대가 생각하는 개혁방향대로라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미래는 왜 영국식보다는 북한식으로 귀결되고 마는지, 따라서 진정 개혁이 필요한 대상은 건강보험의 ‘골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현대국가의 주된 특질들은 ‘시민사회’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국가와 개인, 정부와 시장 사이에서 시민(citizen)의 자발성에 기초해 형성되는 ‘공론의 장’을 시민사회라고 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이 시민사회의 제도적 핵심을 이루는 것은 “자발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비국가적이고 비경제적인 결사”이다. 즉, NGNPO(비정부 비영리 단체)이다. 이러한 단체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근대 시민사회 형성기에 출현한 자유와 평등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확대> 그리고 이를 위한 <국가시스템의 구조개혁과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이들 NGNPO들에게 부여되는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는 국가나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시민 생활영역, 제도 문화로서 ‘자율성 영역’을 부단히 확장함으로서 실현된다.

의료와 건강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되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권리’가 더 강조되는 분야라고 해서, 일방적인 ‘국가주의’ 혹은 ‘정부의존적’인 설계와 공학에만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도 소비자의 선택권과 전문가의 자율성 등 시민의 자유권적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정치공학과 이데올로기에 의존해야 한다면, 시민의 생활세계의 자율영역은 그만큼 축소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회주의국가들처럼 의료시스템이 붕괴되거나, 우리처럼 전형적인 ‘정부실패’로 의료왜곡을 심화시키게 된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NGO들이 과거 사회변혁운동의 행동양식과 사고 틀에서 벗어나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출처 : 자유기업원 ] http://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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