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이 강함이 되어..
정재훈(15)
작성일
05-03-28 12:47 9,618회
5건
본문
약함이 강함이라
일본 시마네 현에서는 기어이
‘독도의 날’ 조례제정을 통과시켰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생각나는 것은 수자원 문제다.
독도 인근 해역에는 가스매장과 함께
수많은 희귀한 어종들이 몰려있기에
인근 해역까지 영유권을 확립하여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속셈에서 그런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식민정책 정당화 문제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군주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관련근거를 만들어 식민주의 사관을 정당화하려
교과서까지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경(右傾)화로 나가는 과정이다.
최근 들어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 하려는 우파 주장이 파도를 치고 있다.
시마네 독도 조례 선포 다음 날,
미국은 얄밉게도 일본 억지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확보하려고
한미에서 미일 밀월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과의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되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 약한 자의 설움을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일본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감정적으로만 대항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철저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식으로 처리한다는 약점 때문에
눈 뜨고도 당하고 살지 않았던가.
정치권에서는 이 일을 두고
군 배치, 결의안 채택, 특별법 추진을
한다고 했지만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일 뿐이다.
아무리 큰 목소릴 낸다 할들
약자(弱者)가 강자(强者)를 어찌하겠는가.
차라리 약자의 전략을 갖고 대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첫째로 ‘약함이 곧 강함’이라고 전략이다.
이사야는 메시아를
가장 약한 연한 순과 어린 양으로 비유했다.
연한 순은 누가 밟으면 밟힐 수밖에 없고
뽑으면 뽑힐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는 실제로 연한 순(旬)처럼
멸시하는 자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
버리는 자들에게 버림 당하셨다.
때리는 자들에게 맞으셨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모욕을 당하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은 줄 알았던 연한 순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부활의 열매가 맺힌 것이다.
곧 그의 약함이 우리에겐 구원이 된 것이다.
기독교 역사상
자칭 재림예수라는 이단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는 약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강자인 반면에
우리는 연한 순(旬)처럼 약하기에 오랫동안
짓밟혀 왔지만,
연한 순에게서 싹이 나오듯이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북사람과 호남사람이 서울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생존 본능의 결속이 강하기 때문이다.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약점들을 하나로 모은다면
불리했던 것들은 더 강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최대 약점이었던 급한 성격이 오히려
핸드폰을 세계 정상으로 만들었고
인터넷 강국이 되게 했다.
이 빨리빨리 정신이야말로 미래
한국이 가질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한국인은 또한 정서에 민감한 민족이다.
이런 아날로그 심성으로 인해 당파 싸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큰 강점이 되고 있다.
월드컵 때 수천만 명의 국민을 하나로 묶은
장엄한 감동의 드라마는 세상 어디에 가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이 연출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한국인은 열 받으면 아무도 못 말린다.
그 열정을 누가 따라오겠는가.
그러한 다혈질적인 심성은 21세기에
가장 잘 매치가 되는 장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또 개성이 강하다.
우리 민족성은 모래처럼 개체가 강하기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가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워낙 개성이 강하기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본인에 비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감성과 개성에 근거한
창의력이 중요한 사회이므로
우리가 일본보다 벤처기업 수가 많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더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약자가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은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다.
굴욕을 일방적으로 감수하는 것도,
또 자존심만 내세운 지나친 명분적인 대응도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철저하게 실용적 입장에서
제반 여건을 활용하는 냉철한 대응만이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외길이다.
미국과 일본의 오만(傲慢)과 편견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으로 우리는
'실사구시'에서 찾아야 한다.
조선조 실학파들은
권력의 기반인 성리학에 맞서 실사구시를 추구했다.
실학의 핵심적 명제인 실사구시는
역사적 개념인 동시에 오늘의 현실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적 의미로 제시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이념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구조의 다원화 현상에서
이분법적인 이념대립만으로는 우리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진단조차
할 수 없는 유아적 자세일 뿐이다.
이 정권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새 정치와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혁이란 백성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경제적 이익만을
최우선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힘을 기르자는 뜻이다.
한반도는 미국의 제국주의,
중국의 패권주의, 일본의 군국주의가 충돌하는
한복판에 서 있는 땅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그들의 각축장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정신 차리고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
아무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아무도 우리를 자기네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힘을 길러야만 한다.
도산은 우리 민족이 독립에 필요한
아니 독립을 달성할 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고
수 없이 강조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하나다.
힘이 곧 정의(正義)라는 사실이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는 것도 다 힘을 믿고
알면서도 까불고 있는 것이다.
힘을 길러야 한다.
외교로 국가를 방위하는 것은
언제나 예속적이고 사대주의의 행태로 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우리만의 고유의 힘을 비축해야 한다.
어느 비정규직원의 고백이다.
‘비정규직에서 탈출하는 길은
실력을 쌓아 스스로 회사가 붙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제발 국익(國益)을 생각하자.
노사관계에서 정치인들부터 먼저...
학생들은 5분이라도 더 공부하는 길이
일본을 이기고
미국에게 설움 당하지 않는 길이다.
주여,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약점이 강점이 됨을 알고
지혜롭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가게 하소서.
우리의 약함이
비전을 낳는 밑거름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약한 것이
강함이 되어 저들의 조롱이 통곡이
되게 하소서.
날마다
실력을 쌓게 하소서.
내일을 바라보고
오늘을 견디게 하소서.
일본 시마네 현에서는 기어이
‘독도의 날’ 조례제정을 통과시켰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생각나는 것은 수자원 문제다.
독도 인근 해역에는 가스매장과 함께
수많은 희귀한 어종들이 몰려있기에
인근 해역까지 영유권을 확립하여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속셈에서 그런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식민정책 정당화 문제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군주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관련근거를 만들어 식민주의 사관을 정당화하려
교과서까지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경(右傾)화로 나가는 과정이다.
최근 들어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 하려는 우파 주장이 파도를 치고 있다.
시마네 독도 조례 선포 다음 날,
미국은 얄밉게도 일본 억지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확보하려고
한미에서 미일 밀월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과의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되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 약한 자의 설움을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일본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감정적으로만 대항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철저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식으로 처리한다는 약점 때문에
눈 뜨고도 당하고 살지 않았던가.
정치권에서는 이 일을 두고
군 배치, 결의안 채택, 특별법 추진을
한다고 했지만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일 뿐이다.
아무리 큰 목소릴 낸다 할들
약자(弱者)가 강자(强者)를 어찌하겠는가.
차라리 약자의 전략을 갖고 대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첫째로 ‘약함이 곧 강함’이라고 전략이다.
이사야는 메시아를
가장 약한 연한 순과 어린 양으로 비유했다.
연한 순은 누가 밟으면 밟힐 수밖에 없고
뽑으면 뽑힐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는 실제로 연한 순(旬)처럼
멸시하는 자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
버리는 자들에게 버림 당하셨다.
때리는 자들에게 맞으셨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모욕을 당하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은 줄 알았던 연한 순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부활의 열매가 맺힌 것이다.
곧 그의 약함이 우리에겐 구원이 된 것이다.
기독교 역사상
자칭 재림예수라는 이단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는 약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강자인 반면에
우리는 연한 순(旬)처럼 약하기에 오랫동안
짓밟혀 왔지만,
연한 순에게서 싹이 나오듯이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북사람과 호남사람이 서울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생존 본능의 결속이 강하기 때문이다.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약점들을 하나로 모은다면
불리했던 것들은 더 강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최대 약점이었던 급한 성격이 오히려
핸드폰을 세계 정상으로 만들었고
인터넷 강국이 되게 했다.
이 빨리빨리 정신이야말로 미래
한국이 가질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한국인은 또한 정서에 민감한 민족이다.
이런 아날로그 심성으로 인해 당파 싸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큰 강점이 되고 있다.
월드컵 때 수천만 명의 국민을 하나로 묶은
장엄한 감동의 드라마는 세상 어디에 가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이 연출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한국인은 열 받으면 아무도 못 말린다.
그 열정을 누가 따라오겠는가.
그러한 다혈질적인 심성은 21세기에
가장 잘 매치가 되는 장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또 개성이 강하다.
우리 민족성은 모래처럼 개체가 강하기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가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워낙 개성이 강하기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본인에 비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감성과 개성에 근거한
창의력이 중요한 사회이므로
우리가 일본보다 벤처기업 수가 많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더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약자가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은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다.
굴욕을 일방적으로 감수하는 것도,
또 자존심만 내세운 지나친 명분적인 대응도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철저하게 실용적 입장에서
제반 여건을 활용하는 냉철한 대응만이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외길이다.
미국과 일본의 오만(傲慢)과 편견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으로 우리는
'실사구시'에서 찾아야 한다.
조선조 실학파들은
권력의 기반인 성리학에 맞서 실사구시를 추구했다.
실학의 핵심적 명제인 실사구시는
역사적 개념인 동시에 오늘의 현실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적 의미로 제시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이념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구조의 다원화 현상에서
이분법적인 이념대립만으로는 우리 문제점을
현실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진단조차
할 수 없는 유아적 자세일 뿐이다.
이 정권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새 정치와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혁이란 백성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경제적 이익만을
최우선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힘을 기르자는 뜻이다.
한반도는 미국의 제국주의,
중국의 패권주의, 일본의 군국주의가 충돌하는
한복판에 서 있는 땅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그들의 각축장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정신 차리고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
아무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아무도 우리를 자기네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힘을 길러야만 한다.
도산은 우리 민족이 독립에 필요한
아니 독립을 달성할 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고
수 없이 강조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하나다.
힘이 곧 정의(正義)라는 사실이다.
일본이 저렇게 나오는 것도 다 힘을 믿고
알면서도 까불고 있는 것이다.
힘을 길러야 한다.
외교로 국가를 방위하는 것은
언제나 예속적이고 사대주의의 행태로 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우리만의 고유의 힘을 비축해야 한다.
어느 비정규직원의 고백이다.
‘비정규직에서 탈출하는 길은
실력을 쌓아 스스로 회사가 붙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제발 국익(國益)을 생각하자.
노사관계에서 정치인들부터 먼저...
학생들은 5분이라도 더 공부하는 길이
일본을 이기고
미국에게 설움 당하지 않는 길이다.
주여,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약점이 강점이 됨을 알고
지혜롭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가게 하소서.
우리의 약함이
비전을 낳는 밑거름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약한 것이
강함이 되어 저들의 조롱이 통곡이
되게 하소서.
날마다
실력을 쌓게 하소서.
내일을 바라보고
오늘을 견디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