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썰렁해서 퍼왔다. - 45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후배 수기
박창홍(15)
작성일
05-10-14 03:48 9,756회
1건
본문
차진석
45회사법시험수석합격·경희대在
Ⅰ. 2년의 삶
어려운 나날....
1998년.. 군대를 제대하면서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다. 당장 밥먹을 걱정을 해야했고, 제대의 기쁨을 누리기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99년이 되어 2학년에 복학을 하면서 힘들게 학교생활을 하였다. 수원의 친구집에서 회기동까지 2시간이 되는 거리를 매일 통학하는 것이 가장 큰 곤욕이었다. 하루에 4시간 가량을 지하철에서 그리고 40여분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그 당시 나에겐 정말 불행이었다. 그러던 중 결국 울산에 있는 집을 팔게 되었고, 경주의 외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느 정도 빚이 청산되었을까? 생활에 조금씩 안정이 찾아오길 시작하였고, 학교 앞(회기동)에 조그마한 방을 한 칸 얻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형이 대기업에 취업하면서 부모님은 조금 더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던 일이 생겼다. 갑자기 장 천공이 생겨서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된 것이었다. 2001년 봄이었다. 수술을 받고 난 후 경주로 내려와 집에서 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사법시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아버지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 주었지만 어머니는 반대를 하셨다. 몸도 많이 나약해져있고, 잘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상정하면 아니 생각해 보기도 싫으시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머니를 설득한 후 수술을 핑계로 1년 휴학을 하였고, 2001년 6월 1일에 신림동 고시원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새로운 삶에의 적응
1평 남짓한 조그마한 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갑갑한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방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한쪽 벽은 비스듬하여 별장의 다락방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 이곳은 나만의 공간이며,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고, 더더군다나 이곳은 바로 나의 미래의 꿈을 실현해 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니는 독서실은 다니지 않았다. 독서실은 정말로 답답했기 때문이다. 특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조차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은 나를 너무 숨막히게 했다. 다만 점심이나 저녁식사 후에는 매일같이 산에 올라가서 운동을 했다. 정신을 맑게 해주고, 육체적으로 약해진 나에게는 더 없는 보약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람들에게 답답한 공간은 나에게 훌륭한 삶의 터전이었고, 운동은 삶의 원동력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9개월간의 준비 끝에 1차 시험을 쳤고, 2002년 5월에 1차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작은 혼돈과 새로운 출발
1차 시험 직후 채점을 하였고, 1주일 후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차를 준비하던 9개월 내내 오로지 1차 시험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했고, 다른 것은 나에게 없었다. 그러나 ‘혼돈’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왔다. 9개월 동안 1차 시험만을 위한 생각을 하여서 막상 2차를 준비하려고 하니까 도무지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예비순환 기간 내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별장의 다락방은 부랑자 수용시설처럼 느껴졌고, 매일 가던 운동은 삶을 피곤하게 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신림동의 생활을 접고, 모든 짐을 챙겨서 2차 시험(동차) 직후 경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집에 내려와서 1주일간 푹쉰후 신림동에서 사온 책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정말 마음 편하게 공부하였고, 덕분에 살도 많이 찌게 되었다. 이렇게 3개월 반(2002년 7월부터 10월 중순까지)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2차 공부를 하였다. 점점 2차시험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자신감도 충만하게 되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야 한다.
1차시험이 나에게 운으로 주어졌든 실력으로 주어졌든 이것은 나에게 2차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분명하다. 이런 기회는 아마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불현 듯 집에 혼자 공부하는 것이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짐을 꾸려 신림동으로 돌아왔다. 신림동으로 온 첫날 이상하게도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조그마한 미니원룸에서 다시 시작을 하였다. 물론 독서실은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은 이틀에 한번꼴로 갔다. 그리고 주말에는 답답한 마음을 가라 앉히고자 관악구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2월까지 공부를 하였다.
새로운 전환점과 마지막 도약
03년 2월의 막바지에 약간의 슬럼프가 있었다. 자만심일까? 어느 정도 단권화가 되고, 대부분의 과목이 이해가 되니까 마음이 느슨해졌다. 그러던 중 ‘장대규’라는 후배녀석의 방에 가게 되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여기에 그 후배에 대해 받은 인상을 적고 싶지만 문장력이 짧아서 아쉽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내가 해온 공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4개월이나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4개월밖에 안남았는데...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어리지만 사려깊은 후배녀석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4개월을 알차게 보낼 수가 있었다.
후회없는 도전
2차 시험 마지막 형소법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2년의 길은 후회가 없는 길이었고, 도전이었다. 제45회 2차 시험이 다소 어려워서 말들이 많았지만, 그리고 나 또한 걱정도 많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하에 친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지난 2년을 내 자신에게 부끄럼없이 마음껏 공부하였고, 신나게 공부하였다. 그것으로 족했고, 어떤 역경이 있어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Ⅱ. 공부방법 - 1차시험
민법 - 교재는 신림동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곽윤직 교수님 책을 학교에서 2회독하였고, 신림동에서 1차공부를 할때에는 김준호 교수님 기본서 5회독, 유정 변호사의 조문·판례를 10회독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이론에 자신이 있어서 유정변호사의 조문·판례를 중점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문제집은 각 학원에서 실시하는 진도별, 전범위 모의고사 문제집과 일요일에 실시되는 모의고사를 거의 다 풀었습니다. 틀린 문제와 판례는 포스트잇에다가 적어서 유정 조문·판례를 붙이는 식으로 단권화를 했습니다. 형법 - 이재상교수님 기본서 4회독과 신호진 강사의 요론을 10회독 하였습니다. 문제집은 역시 민법과 동일합니다. 헌법 - 권영성 교수님 기본서 5회독과 황남기 헌법 10회독을 했습니다. 문제집은 역시 민법과 동일합니다. 선택과목 - 경제법을 하였고, 8월부터 시작했습니다. 공부는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선택과목만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1월까지 6회독을 하고, 2월에 4회독 정도 했습니다.
민법과 헌법은 학원에서 기본강의 한번씩 듣고, 형법은 테입을 한번 듣고, 경제법은 학원강의를 듣고, 계속 혼자서 반복학습을 하였습니다. 단권화(틀린 문제와 새로운 판례를 옮겨 적는 작업)는 12월 까지 했고, 그렇게 단권화 되어가는 책을 계속 반복해서 정독하였습니다.
Ⅲ. 공부방법 - 2차시험
헌법 - 권영성 기본서, 정회철 단문·케이스, 금동흠 케이스, 행정법 - 김동희 기본서, 이병철 요약서, 이재화 케이스, 이병철 케이스, 단문집, 상법 - 정찬형 기본서 상·하, 김혁붕 상법강의, 임재철 상법요론, 임재철 케이스, 민법 - 김준호 기본서, 김종률 케이스, 송영곤 케이스, 박승수 케이스, 형법 - 이재상 총론·각론, 이재상 케이스, 업그레이드 케이스, 김정철 케이스, 광장판례, 민소법 - 이시윤 기본서, 등대 케이스, 박승수 케이스, 형소법 - 이재상 기본서, 이재상 케이스, 업그레이드 케이스, 단문집, 광장판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교재를 보고, 어떤 강사의 강의를 듣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 과목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론의 흐름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학습이 중요합니다. 특히 2차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흐름을 깨우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교재를 선택하면 됩니다. 특히 다양한 교재를 읽기 보다는 한 교재만 중점적으로 계속 공부를 하고, 타 교재는 참조만 해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불의타 문제를 대비하여 자신만의 답안 작성 노하우를 터득하기 바랍니다.(제45회 2차시험에서 많은 수험생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는데, 저는 이런면에서 많은 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터디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학원강의나 테잎을 듣고 이해하는데 별반 어려움이 없으면 혼자 공부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3월부터 시작하는 모의시험의 경우에는 밥터디(?)라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답안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면서 부족한 점을 메꾸어 나가세요. 그리고 항상 모범답안에만 중점을 두지 말고, 성적이 저조한 답안은 왜 그렇게 밖에 점수가 나오지 않는지도 생각을 해보세요. 간단히 말해서, 좋은 성적의 답안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가 있겠지만 꼴지로 붙는 사람의 답안은 과연 어떤지 생각해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볼만 합니다. 그것보다 조금만 잘 쓰면 합격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처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은 민법 공부할 때 곽윤직 교수님 기본서를 한번쯤은 정독하는 것이 도움이 될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감을 가지세요.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Ⅳ. 감사의 글
어떻게 보면 제가 준비한 2년 1개월의 시간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우선 이 기간동안 저에게 많은 믿음과 용기를 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항상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할머니와 이모, 든든한 후원자인 형에게 고마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죽마고우인 명준, 창진, 경범, 재현, 태수, 충렬은 저와의 우정이 영원하리라 믿고, 신림동과 학교에서 용기를 북돋아준 주현, 대규, 성욱이형, 정현, 성복 정말 감사합니다. 내년에 꼭 합격의 영광이 있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함께 연수원에서 힘든 공부를 할 경섭선배, 영탁선배, 순재선배, 오연이 형, 영덕, 현진이 앞으로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여러분에게도 빠른 시일내에 합격의 영광이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꼭 사랑하고 싶은 여자, 98년부터 나의 삶의 중심을 이끌어준 여자, 당신이 있기에 제 삶이 더욱 빛이 납니다. 당신의 그 아름다운 이름, 서현희 앞에 제 사랑을 바칩니다.
45회사법시험수석합격·경희대在
Ⅰ. 2년의 삶
어려운 나날....
1998년.. 군대를 제대하면서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다. 당장 밥먹을 걱정을 해야했고, 제대의 기쁨을 누리기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99년이 되어 2학년에 복학을 하면서 힘들게 학교생활을 하였다. 수원의 친구집에서 회기동까지 2시간이 되는 거리를 매일 통학하는 것이 가장 큰 곤욕이었다. 하루에 4시간 가량을 지하철에서 그리고 40여분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그 당시 나에겐 정말 불행이었다. 그러던 중 결국 울산에 있는 집을 팔게 되었고, 경주의 외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느 정도 빚이 청산되었을까? 생활에 조금씩 안정이 찾아오길 시작하였고, 학교 앞(회기동)에 조그마한 방을 한 칸 얻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형이 대기업에 취업하면서 부모님은 조금 더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던 일이 생겼다. 갑자기 장 천공이 생겨서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된 것이었다. 2001년 봄이었다. 수술을 받고 난 후 경주로 내려와 집에서 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사법시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아버지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 주었지만 어머니는 반대를 하셨다. 몸도 많이 나약해져있고, 잘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상정하면 아니 생각해 보기도 싫으시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머니를 설득한 후 수술을 핑계로 1년 휴학을 하였고, 2001년 6월 1일에 신림동 고시원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새로운 삶에의 적응
1평 남짓한 조그마한 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갑갑한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방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한쪽 벽은 비스듬하여 별장의 다락방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 이곳은 나만의 공간이며,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고, 더더군다나 이곳은 바로 나의 미래의 꿈을 실현해 가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니는 독서실은 다니지 않았다. 독서실은 정말로 답답했기 때문이다. 특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조차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은 나를 너무 숨막히게 했다. 다만 점심이나 저녁식사 후에는 매일같이 산에 올라가서 운동을 했다. 정신을 맑게 해주고, 육체적으로 약해진 나에게는 더 없는 보약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람들에게 답답한 공간은 나에게 훌륭한 삶의 터전이었고, 운동은 삶의 원동력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9개월간의 준비 끝에 1차 시험을 쳤고, 2002년 5월에 1차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작은 혼돈과 새로운 출발
1차 시험 직후 채점을 하였고, 1주일 후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차를 준비하던 9개월 내내 오로지 1차 시험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했고, 다른 것은 나에게 없었다. 그러나 ‘혼돈’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왔다. 9개월 동안 1차 시험만을 위한 생각을 하여서 막상 2차를 준비하려고 하니까 도무지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예비순환 기간 내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별장의 다락방은 부랑자 수용시설처럼 느껴졌고, 매일 가던 운동은 삶을 피곤하게 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신림동의 생활을 접고, 모든 짐을 챙겨서 2차 시험(동차) 직후 경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집에 내려와서 1주일간 푹쉰후 신림동에서 사온 책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정말 마음 편하게 공부하였고, 덕분에 살도 많이 찌게 되었다. 이렇게 3개월 반(2002년 7월부터 10월 중순까지)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2차 공부를 하였다. 점점 2차시험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자신감도 충만하게 되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야 한다.
1차시험이 나에게 운으로 주어졌든 실력으로 주어졌든 이것은 나에게 2차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분명하다. 이런 기회는 아마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불현 듯 집에 혼자 공부하는 것이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짐을 꾸려 신림동으로 돌아왔다. 신림동으로 온 첫날 이상하게도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조그마한 미니원룸에서 다시 시작을 하였다. 물론 독서실은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은 이틀에 한번꼴로 갔다. 그리고 주말에는 답답한 마음을 가라 앉히고자 관악구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2월까지 공부를 하였다.
새로운 전환점과 마지막 도약
03년 2월의 막바지에 약간의 슬럼프가 있었다. 자만심일까? 어느 정도 단권화가 되고, 대부분의 과목이 이해가 되니까 마음이 느슨해졌다. 그러던 중 ‘장대규’라는 후배녀석의 방에 가게 되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여기에 그 후배에 대해 받은 인상을 적고 싶지만 문장력이 짧아서 아쉽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내가 해온 공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4개월이나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4개월밖에 안남았는데...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어리지만 사려깊은 후배녀석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4개월을 알차게 보낼 수가 있었다.
후회없는 도전
2차 시험 마지막 형소법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2년의 길은 후회가 없는 길이었고, 도전이었다. 제45회 2차 시험이 다소 어려워서 말들이 많았지만, 그리고 나 또한 걱정도 많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모두가 똑같은 조건하에 친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지난 2년을 내 자신에게 부끄럼없이 마음껏 공부하였고, 신나게 공부하였다. 그것으로 족했고, 어떤 역경이 있어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Ⅱ. 공부방법 - 1차시험
민법 - 교재는 신림동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곽윤직 교수님 책을 학교에서 2회독하였고, 신림동에서 1차공부를 할때에는 김준호 교수님 기본서 5회독, 유정 변호사의 조문·판례를 10회독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이론에 자신이 있어서 유정변호사의 조문·판례를 중점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문제집은 각 학원에서 실시하는 진도별, 전범위 모의고사 문제집과 일요일에 실시되는 모의고사를 거의 다 풀었습니다. 틀린 문제와 판례는 포스트잇에다가 적어서 유정 조문·판례를 붙이는 식으로 단권화를 했습니다. 형법 - 이재상교수님 기본서 4회독과 신호진 강사의 요론을 10회독 하였습니다. 문제집은 역시 민법과 동일합니다. 헌법 - 권영성 교수님 기본서 5회독과 황남기 헌법 10회독을 했습니다. 문제집은 역시 민법과 동일합니다. 선택과목 - 경제법을 하였고, 8월부터 시작했습니다. 공부는 매월 마지막 일요일은 선택과목만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1월까지 6회독을 하고, 2월에 4회독 정도 했습니다.
민법과 헌법은 학원에서 기본강의 한번씩 듣고, 형법은 테입을 한번 듣고, 경제법은 학원강의를 듣고, 계속 혼자서 반복학습을 하였습니다. 단권화(틀린 문제와 새로운 판례를 옮겨 적는 작업)는 12월 까지 했고, 그렇게 단권화 되어가는 책을 계속 반복해서 정독하였습니다.
Ⅲ. 공부방법 - 2차시험
헌법 - 권영성 기본서, 정회철 단문·케이스, 금동흠 케이스, 행정법 - 김동희 기본서, 이병철 요약서, 이재화 케이스, 이병철 케이스, 단문집, 상법 - 정찬형 기본서 상·하, 김혁붕 상법강의, 임재철 상법요론, 임재철 케이스, 민법 - 김준호 기본서, 김종률 케이스, 송영곤 케이스, 박승수 케이스, 형법 - 이재상 총론·각론, 이재상 케이스, 업그레이드 케이스, 김정철 케이스, 광장판례, 민소법 - 이시윤 기본서, 등대 케이스, 박승수 케이스, 형소법 - 이재상 기본서, 이재상 케이스, 업그레이드 케이스, 단문집, 광장판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교재를 보고, 어떤 강사의 강의를 듣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 과목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론의 흐름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학습이 중요합니다. 특히 2차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흐름을 깨우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교재를 선택하면 됩니다. 특히 다양한 교재를 읽기 보다는 한 교재만 중점적으로 계속 공부를 하고, 타 교재는 참조만 해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불의타 문제를 대비하여 자신만의 답안 작성 노하우를 터득하기 바랍니다.(제45회 2차시험에서 많은 수험생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는데, 저는 이런면에서 많은 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터디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학원강의나 테잎을 듣고 이해하는데 별반 어려움이 없으면 혼자 공부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3월부터 시작하는 모의시험의 경우에는 밥터디(?)라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답안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면서 부족한 점을 메꾸어 나가세요. 그리고 항상 모범답안에만 중점을 두지 말고, 성적이 저조한 답안은 왜 그렇게 밖에 점수가 나오지 않는지도 생각을 해보세요. 간단히 말해서, 좋은 성적의 답안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가 있겠지만 꼴지로 붙는 사람의 답안은 과연 어떤지 생각해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볼만 합니다. 그것보다 조금만 잘 쓰면 합격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처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은 민법 공부할 때 곽윤직 교수님 기본서를 한번쯤은 정독하는 것이 도움이 될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감을 가지세요.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Ⅳ. 감사의 글
어떻게 보면 제가 준비한 2년 1개월의 시간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우선 이 기간동안 저에게 많은 믿음과 용기를 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항상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할머니와 이모, 든든한 후원자인 형에게 고마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죽마고우인 명준, 창진, 경범, 재현, 태수, 충렬은 저와의 우정이 영원하리라 믿고, 신림동과 학교에서 용기를 북돋아준 주현, 대규, 성욱이형, 정현, 성복 정말 감사합니다. 내년에 꼭 합격의 영광이 있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함께 연수원에서 힘든 공부를 할 경섭선배, 영탁선배, 순재선배, 오연이 형, 영덕, 현진이 앞으로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여러분에게도 빠른 시일내에 합격의 영광이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꼭 사랑하고 싶은 여자, 98년부터 나의 삶의 중심을 이끌어준 여자, 당신이 있기에 제 삶이 더욱 빛이 납니다. 당신의 그 아름다운 이름, 서현희 앞에 제 사랑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