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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이바구

김종렬(09) 작성일 06-10-30 11:36 9,627회 0건

본문

요즘은 계절 탓인지 주말은 그저 짧기만 합니다.
윗쪽에서는 제법 단풍 소식이 묻어오는네, 아직 이곳은 좀 이른 듯합니다.
근래 들어 다시 소나무에 미쳐, 통 일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야생 소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한 15년 전인 것 같은데, 당시에 좀 찝적이다가 그냥 덮어두었는데, 근래 다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습죠. 하여 요즘은 틈만 나면 고향 주변 산중에 처박혀 있습니다. 온 산을 오르내리며 눈에 드는 놈 있으면 다듬어 놓는 일이지요.
대상은 2~3년생짜리 볼펜 굵기에서부터 한아름 되는 큰 것까지 다양합니다. 혹 몰래 파내 팔거나 한 곳에다 심는냐구요?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잘 생기고 멋진 나무들이 환경에 밀폐당해 제 형태를 잃어가고 있어, 제대로 살려주는 일입니다. 주위의 잡나무를 솎아내어 채광과 통풍을 원만하게 하게 해주고, 가지치기를 통해 기품있고 균형있는 체형을 만들어주는 일이랍니다. 
처음엔 숯 속에 묻혀 볼품없고 형편없던 소나무들이 점차 생기를 되찾고 품위를 갖추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요. 스스로 즐기고 만족하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조경업을 하는 전문가가 구경 좀하기에 데리고 구경시켜주었더니, 대뜸 가타부타 말은 않고 수천만원에 팔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런 대상이 아니라며 정중히 사양했지만...
(가만히 앉아서 횡재할 뻔했는데, 제가 좀 고지식한가요?ㅎㅎ)
어제는 종일 네 그루 손질하다 보냈는데, 아까운 가지를 하나 자른 것 같아 맘이 찜찜하군요.
혹 소나무에 관심 있으면 연락주세요. 같이 함 둘러보시게.
어때요. 이 가을에 임자들도 어느 산이든 소나무 하나 정해놓고 다듬고 키우며 정을 나누어 보시지요. 자신이 소나무를 닮아가든, 소나무가 자신을 닮아가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 아닌 또다른 나를 산에서 마주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될 겁니다. 도구래야 톱과 전지가위만 있으면 되구요. 그래도 꼭 마당이나 정원에 심고 싶다면 한 두 그루는 눈감아 줍니다. 대신 주이지 않는 조건으로...ㅋㅋ
아마도 이번 주말까지 기다리기엔 고통이 너무 길 것 같습니다. 낼모레쯤 일상을 미루고라도 놈들을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사실 시들시들 죽어가는 친구들이 이 산 저 산에 너무 많답니다. 자식들은 내가 다가가면 아플 줄도 모르고 베시시 웃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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