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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끝냄이 또다른 하나의 시작이다(백두대간을 시작하며)

최동현(09) 작성일 06-12-14 15:12 9,621회 5건

본문

하늘재.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고개, 하늘재에을 넘어언제 이화령에 도착하여 다리를 쉬게 할까라는생각이 먼저던다. 영혼도 쉬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새들도 넘기 힘든' 조령 등 험준한 요새 잇닿은 문경새재
신립장군 임진왜란 때 새재 대신 탄금대 배수진으로 참패
조령산서 바라본 신선봉•깃대봉 하늘 찌를 듯한 기세 자랑
길은 직선을 지향하고 사람들은 끝없이 편리함을 추구한다. 직선은 편리함을 담보로 지리적 위치를 달리해왔다. 산 고개에서, 중턱으로, 다시 산 아래로, 이젠 땅속으로 길을 내놓았다. 결국 직선이란 인간의 욕망대로 속도를 방편으로 편리함까지 찾은 셈이다. 이화령도 그런 인간의 욕심 때문에 지금 땅속에서 웅 웅 신음하고 있다. 
조봉(671m)을 지나 759봉우리까진 숨고르기가 편한 길이다.
바람속엔 이미 겨울이 숨어들었다. 한기가 느껴진다.
조령산(1025m)은 1000곒가 넘는 봉우리다. 새들도 조령에 갇히면 넘기 힘들다는 조령(鳥嶺)이 되었고, 억새가 우거졌다 하여 새재라 불리기도 했다. 동쪽 맞은편엔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이 우뚝 서 있고 동쪽으로 부봉, 북쪽으론 마패봉, 신선봉에 이르기 까지 문경새재를 둘러쌓은 천험의 요새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계곡 길, 이십 여리가 문경새재이다.
산굽이가 오죽 길었으면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 소리가락이 되기도 했던 고갯길, 옛날에 한양 천리라 천 리길의 중심이 된 고개, 전라도는 호강(湖江•錦江의 옛 지명)의 남쪽이라 호남(湖南)이라 했고, 영남은 이곳 조령(鳥嶺), 죽령(竹嶺)의 남쪽이니 영남(嶺南)이라 했던 고개이다.
조령산까지는 산길이 가파르게 몸을 일으키는 형국이다. 숨소리가 걸음걸이를 따라가질 못한다. 조령샘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숨소리를 쉬게 했다. 모두 상기된 표정이다. 어느새 사오십대 중년들이 이십대 청년들처럼 얼굴이 상기되어있다. 산은 그런 곳이다.
문경새재는 사람이 살만한 길지(吉地)라기보다 천혜의 협곡으로 둔세지(遁世地)나 피병지에 해당되는 곳이었으리라. 그러나 영남의 목구멍에 해당되는 요새임에도 단 한 번 나라의 방어선 역할을 하지 못한 안타까운 곳이다.
선조 25년 4월 왜군이 부산포로 쳐들어오자 신립(申砬)은 삼도순변사로 부임했으나 천험지지(天險之地)인 새재를 포기하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는 바람에 조선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장군은 그곳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았었다.
당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도 이곳을 지나면서 '신립장군은 왜 천험의 요새를 버렸는가'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장군이 새재를 포기한 이유를 사가(史家)들은 추측만 할 뿐 역사는 이미 야사(野史)가 되어버렸다.
급조된 민병 8000 병력으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설과 주 병력이 기마부대인 관계로 협곡에선 절대 불리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서 신립장군의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서 '천험만을 믿어서는 패할 것입니다. 병사들이 오합지졸인 관계로 배수진을 쳐야 죽기를 다해 싸울 것입니다.'라며 탄금대에 배수진을 칠 것을 현몽(現夢)했다. 여인은 신립장군이 오래전에 생명을 구해준 여인이었건만 '장수는 금색(禁色)이 본령(本鈴)이라' 애원하는 여인을 물리쳤던 것이 훗날 배수진의 화가 되었다는 야사(野史)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조령산에서 조망되는 봉우리들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신선봉(937m)과 깃대봉(821m)으로 이어지는 바위산들은 하늘이라도 찌를 기세였고 발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이다. 절경에 눈길을 빼앗기다 로프에 간신히 매달리기도 하고, 암벽에 몸을 비집고 빠져 나오길 몇 번, 923봉을 지나 암봉에 몸을 뉘이니 건너편 사자봉아래 조곡관 계곡은 하얀 눈꽂이 피어있다.
제3관문인 조령관 아래 잔디밭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9km, 겨우 절반을 온 셈이다. 그 유명했던 조령관문이다. 지금에야 가장 산책하기 좋은 길이 되었지만 새재의 축성방향은 다소 혼란스러운 점이 많다.
분명 새재입구 주흘관은 축성방향이 남쪽이다. 조령관은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축성이다. 왜군이 쳐들어 올 땐 남쪽에서, 그리고 고구려나 백제를 상대할 땐 북문이나 동문처럼 북쪽축성이 당연했으리라.
그러나 북문이나 동문이라는 것이 장정이 훌쩍 뛰어넘어도 될 높이다. '내 여기 있으니 넘어서지 말거라' 하는 경고성 축성에 해당되는 성벽이다
마역봉(927m)을 경유 북문과 동문을 넘어 부봉(921m)에 올라서니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넘어가는 가을햇살 기울기래야 힘없는 노인네 모습이니 기댈 것도 없다. 그냥 발길만 재촉한다. 아직도 남은 거리가 십여 리길이다. 일몰 전 까지 평천재에 도착해야 한다는 산행대장 언급에 선두는 959봉을 도망가듯 넘어 선다.
오늘 산행거리는 사십여리(17.3km)이다. 무릎이 다시 아파온다. 또 다른 대원도 절뚝이며 혼신을 다해 걷고 있다. 모두 지쳐 말을 잃는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이화령 까진 걸어야한다.
하늘가는 고갯길이란다.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길이 된다.
사람이나 짐승은 죽을 때 착해지고 순해진다 했다. 해도 넘어가는 해가 그 아름다움이 지극한 법이다. 석양을 등진 나무들이 옷을 벗고 눈옥을입고 서있는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저 산을 보라. 땅에 발붙이고 사는 자 함부로 해탈을 꿈꾸지 마라 한다. 이미 잎을 버린 나무를 보라. 모두를 주고도 당당하지 않느냐. 진실로 해탈된 자의 모습이 아니더냐고 묻는다.
산은 이제 그만 내려가라며 우리를 어둠으로 밀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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