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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혼자 함 졎어 볼까....?

이채권(07) 작성일 07-09-21 07:40 9,423회 4건

본문

술의 法과 道를 말하다

 

 

 

picasso217.jpg

 

 

대저
성인(聖人)이 술 마시는 법(法)을 만들 때
천지자연(天地自然)의 법칙(法則)에 준거(準據)하여 만든 까닭에
군자(君子)가 이 법도(法度)에 따라 술을 마심으로써
덕(德)을 크게 성취(成就) 할 수 있다.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술은 인간(人間)에 이(利)롭지 않다.
정신(精神)을 흐리게 하고 몸을 상(傷)하게 한다고 …….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술을 마심으로써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해지는 것은
그 속에 맑음이 있는 것이고
몸이 피곤(疲困)해지는 것은
그 속에 굳건함이 있는 것이다.


술에는 대체로 세 가지 큰 덕(德)이 있다.
그 하나는
일으키는 것이고,
둘은 새롭게 하는 것이고,
셋은 통(通)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널리 학문(學文)을 깨쳤어도
주도(酒道)를 통(通) 하여서만
문화(文化)와 큰 덕(德)을 비로소 완성(完成)할 수 있다.


술 마시는 일은
지극(至極)히 어려우나 차차 익혀 나가면
마침내
성취(成就)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주법(酒法)의 광대(廣大)함은 일언(一言)으로 다 말할 수 없으나
대체로
취(醉)한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고
그 법도(法度)를 다음으로 여긴다.
취(醉)한 마음에서 도인(道人)의 정(情)을 알 수 있으며

그 법도(法度)에서
군자(君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인(學人)이 처음으로 주법(酒法)을 배울 때는
반드시 그 마음 일어나는 것을 경계(警戒)하고
오만(傲慢)한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술을 마심에 있어
처음부터
선(善)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온갖 마심(魔心)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술에서 마음을 상(傷)하게 되고
큰 덕(德)을 잃게 되는 것이다.

속인의 마음에 일어나는 취마(醉魔)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화나는 것이오,


둘째는
슬퍼지는 것이요,

셋째는
생각(生覺)에 조리(條理)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선(優先),
세 가지 마심(魔心)이 없다면 더불어 함께 술을 마셔도 좋다.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술의 세 가지 마(魔)를 제압(制壓)하고
그것을 벗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군자(君子)라야 가능(可能)하다.

무릇
술 마시는 큰 일은
마음 안의 일도 되고
몸 밖의 일도 되건만
그 이치(理致)는 음양(陰陽)의 법칙(法則)을 넘어선 것이 없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술 마시는 도리(道理)를 깨우치고자 하면
먼저
음양(陰陽)의 작용(作用)을 통달(通達)하여야 한다.

무릇
작인(酌人)의 도(道)는 음양지도(陰陽之道)이고,
음양(陰陽)의 도(道)는 만물(萬物)의 도(道)인 까닭에


군자(君子)가 작인(酌人)의 도(道)를 깨우치면
천지(天地)의 대리(大理)에 통달(通達)하게 된다.

술자리에는
먼저 귀인(貴人)이 상석(上席)에 앉는데,
우선 편안(便安)한 자리를 상석(上席)이라 하고
장소(場所)가 평등(平等)할 때는
서(西)쪽을 상석(上席)으로 한다.
귀인(貴人)이 동면(東面)하고 자리에 앉으면,
작인(酌人)은 좌우(左右)와 정면(正面)에 앉고,
모두 앉았으면
즉시 상석(上席)에 있는 술잔에 먼저 채우고
차례로 나머지 잔을 채운다.
이때
안주가 아직 차려지지 않았어도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술잔이 비었을 때는
누구라도 그것을 즉시 채운다.

술을 따르는 사람은 안주를 먹고 있어서는 안되고,
술잔을 받는 사람은 말을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술을 받을 때나 따를 때는
술잔을 보고 있어야 한다.


술잔을 부딪치는 것은
친근(親近)의 표시(表示)이나
군자(君子]는 이 일을 자주 하지 않는다.

술잔을 상(床)에서 떼지 않고
술을 받아서도 안되고,
마실 때도 일단(一旦) 잔을 상에서 들어 올리고 멈춰서
사람을 향(向)한 후(後)에 마신다.

술을 마실 때는
잔을 입술에 대고 고개를 뒤로 젖혀서 마시고,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 마신 잔은
직접(直接) 상에 내려 놓지 않고,
일단(一旦) 멈추고 약간(若干) 밖으로 기울여
술잔 속을 보이도록 한 후(後) 내려 놓는다.

마실 때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술잔을 귀(貴)히 여기는 뜻이다.

술을 오른손으로 따르고
두 손으로 받고
두 손으로 따르는 것은
모든 사람을 존경(尊敬)하고 술을 귀(貴)히 여긴다는 뜻이다.

또 두 손으로 마시는 것은
술을 따라 준 사람을 귀(貴)히 여긴다는 뜻과
술은 중(重)히 여긴다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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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盞)이 넘어져 술이 조금 쏟아졌을 때는
그대로 두고,
모두 쏟아졌으면
즉시 그것을 다시 채워 주고,
잔(盞)을 받는 사람은
채워준 사람에게 미안(未安)함을 표시(表示)한다.

술이
안주(按酒)에 쏟아졌을 때는
그 안주(按酒)를 먹어도 좋고
안주(按酒)가 술에 빠졌을 때는 그 안주(按酒)를 버린다.


그 이유(理由)는
술은 천(天)이므로
안주(按酒)에 쏟아진 것이 허물이 되지 않고
안주(按酒)는 지(地)이므로
술에 빠진 것은
지(地)가 요동(搖動)하여 천(天)을 범(犯)한 것이므로 버린다.

또 내가 남에게 따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따르면
자기 잔(盞)은 쳐다보지 않고
따르던 술을 모두 따른 후(後)에
자기 잔(盞)을 약간(若干) 들어
따라 준 사람을 향(向)해 고마움을 표시(表示)한다.

술을 마심에 있어
아직 술이 술병[甁]에 있고 잔(盞)에 따라지지 않았을 때는
태극(太極)의 상태(狀態)로서
천(天)의 기운(氣運)이 운행(運行)하지 않은 것이다.

술이 잔(盞)에 부어지면
천지(天地)가 비로소 열린 것이고,
이것을 들어 마신 것은
천(天)의 기운(氣運)이 만물(萬物)에 퍼진 것이다.


그러므로 술이란 먼저 잔(盞)에 따르고 연후(然後)에 마시는 것이다.


술을 따를 때
술병(甁)을 기울이는 것은

천(天)의 기운(氣運)이 아래고 흐르는 것이요,


따라진 잔(盞)을
받들어 올리는 것은

땅의 기운(氣運)이 상승(上昇)하는 것이다.

천(天)의 기운(氣運)이 내려오고
땅의 기운(氣運)이 상승(上昇)한즉,

천지(天地)가 그 기운(氣運)을 교(交)하는 것이고

천지(天地)가 교(交)한즉,
만물(萬物)은 흥성(興盛)하게 된다.

술이 갖는 이러한 뜻을 군자(君子)는 소중(所重)히 하는 까닭에

작인(酌人)이
서로 마주 앉아 술자리가 시작(始作)되면
반드시
서로가 빈 잔(盞)을 채워 주며,
빈 잔(盞)을 채우지 않았으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빈 잔(盞)을 먼저 채우고 다른 일에 임(臨)하는 것은
만물(萬物)은
천(天)의 기운을 떠나서는 잠시도 존재(存在)할 수 없기 때문이며,
채워진 잔(盞) 위에 다시 따를 수 없는 것은
천명(天命)이 한 번 내려진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시(四時)의 운행(運行)이
차고 비는 뜻이 있으므로 이것을 본뜬 것이다.

대저 술자리가 이미 시작(始作)되었으면

술병은 천(天)이요,
술잔은 지(地)다.

술은 천(天)이며
안주(按酒)는 지(地)다.

그러므로 술병[甁]으로 술을 따른 후(後)에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는 다시 잔(盞)을 채운 후(後)에 안주(按酒)를 먹는다.

술잔에
술이 반드시 채워진 연후(然後)에
안주(按酒)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천(天)이 먼저 존재(存在)한 후
만물(萬物)이 운행(運行)한다는 뜻이 있다.

그리고 작인(酌人)은
충기(沖氣)의 뜻이 있으므로
천(天)도 되고
지(地)도 된다.
그러므로 작인(酌人)이
술을 따를 때는 천(天)이요,
받을 때는 지(地)고,
술을 마실 때는 천(天)이요,
안주를 먹을 때는 지(地)다.

천(天)과 지(地)란

선후(先後)의 뜻이 있고
또한 주종(主從)의 뜻이 있으므로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는 일은 백사(百事)에 우선(優先)하는 것이고
안주(按酒)를 먹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또한 술은 남편(男便)에 비유(比喩)되고
술잔은 부인(婦人)에 해당되므로
술잔은 남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부(丈夫)의 자리에서 한 번 잔(盞)을 돌리는 것은
소중(所重)한 물건(物件)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뜻이 있으므로 비난(非難)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일을 자주 한다는 것은
정(情)이 과(過)하여 음절(陰節)이 요동(搖動)하는 것이라
군자(君子)는 이를 삼간다.

그리고 안주(按酒)를 먹는 일에 있어서도

첫 잔에

안주(按酒)를 안 먹는 것은

양기(陽氣)가 아직 숙성(熟成)하지 않은 까닭에
어린 남자(男子)가 여자(女子)를 취(取)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으므로
아름다운 일이라 할 수 있고,
또한 남에게 먼저 안주(按酒)를 권하는 것도
흥미(興味)를 양보(讓步)한다는 뜻이 있으므로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술을 마실 때

남의 빈 잔(盞)을 먼저 채우는 것은 인(仁)이고,
내가 먼저 잔(盞)을 받고 상대(相對)가 따른 후(後)에
병(甁)을 상(床)에 놓기 전(前)에 바로 잡아서
상대(相對)에게 따르는 것은 인(仁)을 행(行)함이 민첩(敏捷)한 것으로
지극(至極)히 아름다운 것이다[極美也]


또한 술을 따르고 받을 때


두 손으로 받드는 것은
공경(恭敬)하는 뜻이 있는 것이니
군자(君子)의 태도(態度)이다.

따라진 술을 마실 때


먼저 잔(盞)을 들어 상대방(相對方)에게 향(向)하는 것은
술을 권(勸)하는 뜻도 있고
공손(恭遜)한 뜻도 있다.

잔(盞)을 들어 술을 다 마셨을 때

잔(盞)을 앞으로 기울여
잔(盞)의 내면(內面)을 상대(相對)에게 보여 주는 것은
마음을 내보인다는 친근(親近)한 뜻이 있다.

잔(盞)을
한 번에 비우는 것을 명(明)이라 하고,
두 번에 비우는 것은 주(周)라 하고,
세 번에 비우는 것은 진(進)이라 한다.
세 번을 지나는 것을 지(遲)라 하고,
아홉 번이 지나도 잔(盞)을 비우지 못하면
술을 마신다고 하지 않는다.

주(酒)라는 것은


속인(俗人)이 마시면 흥락(興樂)을 얻고,
무인(武人)이 마시면 강락(剛樂)을 얻고,
군자(君子)가 마시면 청락(淸樂)을 얻고,
도인(道人)이 마시면 선락(仙樂)을 얻는다.

이같이 신약(神藥)을 얻으면서 덕(德)을 쌓을 수 있는 것이
술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인생(人生)의 종도(宗道)는
덕(德)을 쌓고 즐기는 것인바,
작인지도(酌人之道)는 이에 부합(附合)된다.

술이란
마음을 순일(純一)하게 하면서도
만물(萬物)의 정(情)에 다 통(通)하게 한다.

그런 까닭에 고선(古仙)이 말하기를
산중(山中)에 있어도 술로써 벗한 즉
천하(天下)를 안다고 하였으며
엄정(嚴正)한 성인(聖人)도 술만은 마음껏 마셨던 것이다.

만약(萬若) 어떤 사람이
비록 학문(學文)을 크게 성취(成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술을 바르게 마실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을 군자(君子)라 말할 것이다.

대저
술이란
마음이 바르지 못한 즉
잘 마실 수 없는 것이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한 즉
정(情)이 편협(偏狹)하다.
정(情)이 편협(偏狹)한 사람은
남을 즐겁게 하지 않고
남을 크게 용납(容納)하지도 못한다.

이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벗을 구(求)함에 있어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을 경계(警戒)하는 것이다.

무릇
술을 잘 마신다고 하는 것은
많이 마심을 뜻하지 않고 바르게 마시는 것을 뜻한다.

술을 마시는 절도(節度)를 모르는 자(者)가
많이만 마신다면 남의 정(情)을 해(害)치게 되며,
적게 마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시경(詩經)에도 말하기를

술에 이미 취(醉)한 사람에게
더욱 권(勸)하는 것이 어찌 군자(君子)겠느냐 하였고,

또 예로부터 전(傳)하는 말에
술을 잘 권(勸)하는 것보다는 잘 마시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군자(君子)가
학문(學文)하는 여가(餘暇)에 술을 마심으로써
원만(圓滿)한 덕(德)을 성취(成就)하는 것이고,
먼 곳에서 벗이 왔을 때도
술이 아니고는 무엇으로 반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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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말로써 많은 뜻을 전(傳)하고
그 정(情)을 합(合)한다 하더라도
술만큼 같지 못하다.

인간(人間)의 몸에 있어서

신기(神氣)는 뇌(腦)에서 오고
정기(精氣)는 황정(黃庭)에서 오는데
신기(神氣)는 내려와 정(精)을 일으키고,
정기(精氣)는 상승(上昇)해 신(神)을 안정(安定)시키면
몸과 마음은 원만(圓滿)하게 되며 이로써 선단(仙丹)을 성취(成就)하게 된다.

작인(酌人)이 취(醉)함에 있어서도
그 기운(氣運)이 위로 향(向)한즉
얼굴에 열(熱)이 모이고
머리에 혼란(混亂)이 오고
그 기운(氣運)이 아래로 향(向)한즉 정기(精氣)가 일어난다.

술의 기운(氣運)에서
정기(精氣)를 얻게 되면
이로써 작정(酌精)을 이룩하게 된다.
만일 군자(君子)가 선단(仙丹),작정(酌精)을 이루면
성인(聖人)의 도(道)를 성취(成就)하는 것은 멀지 않을 것이다.

혹자(或者)는 말한다.
주(酒)로써 몸을 상(傷)하고 수명(壽命)을 다하지 못한다고…….

그렇다[是也].
주(酒)가 몸에 약(藥)이 되지 못하고
그 혼란(混亂)한 독(毒)을 오랫동안 축적(蓄積)한즉
어찌 명(命)을 다할 수 있을까?

술의 독(毒)됨을 모르는 자(者)는
술의 약(藥)됨을 깨달아 얻을 수 없다.

천형(天刑)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者)는
천복(天福)의 다행(多幸)함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는 먼저 술의 이익(利益)을 생각하지 않고
그 독(毒)을 제(制)하는 데 힘쓰는 것이다.

술이란
마시지 않으면
큰 해(害)도 없고 큰 이익(利益)도 없다.

학문(學文)이라는 것도 이와 같다.
조금 아는 사람은 사람을 해(害)치고,
술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自己)를 해(害)친다.

작인(酌人)의 도(道)는
먼저 그 몸을 자연(自然)에 맡겨
그 생(生)의 운행(運行)을 천지(天地)와 함께 하건만
그 유곡(流曲)이 바르다.
대체로
술의 성품(性品)을 먼저 알고,
생천(生天)의 이치(理致)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술의 이익(利益)을 논(論)할 수 있다.

술이란 원래(元來) 생동지물(生動之物)이라
담겨져 있지 않으면 그 작용(作用)을 예측(豫測)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술을 마심에 있어
먼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체(體)다.
몸이 건강(健康)하지 않은즉 술의 독(毒)을 이기기 어렵다.

둘째는 기분(氣分)이다.
기분(氣分)이 평정(平靜)하지 않은즉 술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셋째는 장소(場所)다.
장소(場所)는 시끄러운 곳,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
좌석(坐席)이 불안(不安)한 곳,
햇빛이 직접 닿는 곳,
변화(變化)가 많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많이 마실 수 없다[不得量].

넷째는 때다.
술은 기(氣)의 과정(過程)이므로 묘후(卯候)를 피한다.
묘후(卯候)는 만물(萬物)이 일어나는 때다.
이때는 적게 마시는 것이 좋다.
많이 마신 즉 잘 깨지 않는다.

독(毒)· 력(力)· 양(量)·성(醒)은 술의 사함(四含)이라 하고
작인(酌人)의 도(道)는
먼저 사함(四含)을 이겨 얻는 것인바[制得]
그 이치(理致)를 잘 살펴야 한다.

옛 성인(聖人)이 말하기를

기(氣)가 몸을 제(制)하고
마음이 기(氣)를 제(制)하는 것이니
마음이 바른 즉 몸이 바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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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작인(酌人)이 법도(法度)에 따라 마신 즉
몸이 바르고
이로 인해 기(氣)를 기를 수 있다.

기(氣)란
마음이 평정(平靜)한즉
쌓이고 마음이 들떠 있은즉 흩어진다.

작인(酌人)이 술을 마실 때
술의 순일(純一)한 기운과 합(合)치지 않으면 기(氣)가 요동(搖動)한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는 주석(酒席)에 임(臨)하여

때가 아니면 안주(按酒)에 손대지 않고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정(平靜)을 얻고
술의 기운(氣運)과 화(化)하지 않은즉

고요히 기다린다.


군자(君子)의 술 마시는 태도(態度)는
천지(天地)와 그 운행(運行)을 함께 한다.
천지(天地)의 운행(運行)도 때가 아니면
굳게 잠겨 요동(搖動)하지 않는다.

군자(君子)가
주석(酒席)에서 술을 들이마시고는
고요히 자신(自身)의 마음을 관(觀)한다.

눈을 부드러이 뜨고 있으며,
호흡(呼吸)을 가지런히 하고,
손으로 수저를 들고 있거나
바닥에 기대지 않고 허리를 바르게 한다.

주법(酒法)에서 가장 큰 병(病)은
자신(自身)에 몰두(沒頭)하는 것과
급(急)한 마음이다.

자신(自身)에 몰두(沒頭)하는 것은 막히는 것이고,
급(急)한 마음은 요동(搖動)을 일으킨다.

대저
마음이 바르지 못한 즉
자신(自身)에 크게 집착(執着)하고
마음이 고르지 못한 즉 급(急)한 마음이 되는 까닭에
작인(酌人)은
평직(平直)한 마음을 먼저 수(修)한 연후(然後)
점차(漸次) 주법(酒法)의 깊은 경지(境地)에 들어가게 된다.

술이란
많이 마실수록 변화(變化)가 많고
즐거움도 많지만
그 어려움 또한 극(極)이 없다.
오직
군자(君子)라야 그 중용(中庸)을 잡고
주(酒)에서 천리(天理)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인간(人間)의 몸은

그 기(氣)가 약(弱)할 때 주(酒)를 적게 받아들이고
기(氣)가 다한 즉 술 마시는 일은 불가(不可)하다.

또한 인간(人間)의 마음은

흥(興)이 약(弱)한즉 술을 적게 받아들이고
흥(興)이 다한 즉 술 마시는 일은 불가(不可)하다.

기(氣)와 흥(興)이 다한 즉 어찌 살 수 있을 것인가?

속인(俗人)은 술로써 흥(興)을 기르고
군자(君子)는 기(氣)를 기른다.

도인(道人)은 이 둘을 함께 기른다.

그런 까닭에
속인(俗人)의 술은 몸을 상(傷)하기 쉽고,
군자(君子)의 술은 마음을 상(傷)할 수 있다.

도인(道人)의 술만이 몸과 마음을 이익(利益)케 한다.

속인(俗人)의 술이 몸을 상(傷)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또한 군자(君子)의 술이 마음을 상(傷)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속인(俗人)은 술을 마심에 있어
그 즐거움만 알고 그 법도(法度)를 모르는 까닭에
그 취기(醉氣)의 운행(運行)을 절제(節制)하지 못한다.
또한 군자(君子)는
그 법도(法度)에만 치우치므로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抑制)한다.

이 두가지는 모두 명(命)을 상(傷)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작인(酌人)은 도인(道人)의 술을 구(求)하고자 하는 것이다.

술이란
속인(俗人)이 마시면 마물(魔物)이요,
도인(道人)이 마시면 천명(天命)을 뜻하는 신물(神物)인 까닭에

작인(酌人)이 잔(盞)을 들어 술을 권(勸)하는 것은
성취(成就)를 기원(祈願)하는 것이고
또한 안락(安樂)을 기원(祈願)하는 것이다.

술이 갖는 뜻은 지대(至大)하다 할 것이나
이것을 쓰는 것 또한 지난(至難)하다.

천하(天下)에 인간(人間)이 하는 일이 많건만
술 마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 다음에 어려운 일은 여색(女色)을 접(接)하는 일이요,
그 다음이 벗을 사귀는 일이요,
그 다음이 학문(學文)하는 일이다.

주색 우학(酒色友學).
이 네가지는
군자(君子)가 힘써 수행(修行)해야 하는 것이다.

술이란 마시면
신(神)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정(精)을 손상(損傷)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작인(酌人)이 평소(平素) 정(精)을 기르지 않았다면
술 마시는 일은 불가(不可)하다.

양정(養精)과 양신(養神)은
작인(酌人)이 힘쓰는 지도(至道)이다.
정(精)이라는 것은 발(發)하되 불출(不出)이면
양(養)이고
신(神)이라는 것은 생(生)하되 가라앉으면
양(養)이 된다.

그런 까닭에 술에
취(醉)하여
혼란(混亂)하고
욕심(慾心)을 행(行)하면
정신(精神)이 함께 상(傷)한다.

대체로 술에 취(醉)했을 때는
두 가지 혼란(混亂)이 오고,
세 가지 욕심(慾心)이 생긴다.

두 가지 혼란(混亂)이란
말(言)과 생각(生覺 : 思)이요,

세 가지 욕심(慾心)이란
첫째는 색욕(色慾)이요,
둘째는 식욕(食慾)이요,
셋째는 안거욕(安居慾)이다.

만일(萬一)
작인(酌人)이 취중(醉中)에
능(能)히 두 가지 난(亂)을 평(平)하고
세 가지 욕심(慾心)을 제(制)한다면
술을 오래 마셔도 가(可)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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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란
싸음을 할 때 적(敵)과 같아서

처음부터 이겨 나간 즉
취기(醉氣)가 약(弱)해져서
내가 점점(漸漸) 강(强)해질 수 있고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면
취기(醉氣)가 강(强)해져서
나는 점점(漸漸) 약(弱)해지고 마침내 패(敗)하게 된다.

취기(醉氣)에 패(敗)하면
신정(神精)이 상(傷)하고
의지(意志)도 꺽여서 후일(後日)에도 장애(障碍)가 된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술을 들 때에는
언제나 최선(最善)을 다하고
반드시 이기고,
신정(神精)을 보(補)하여 지(志)를 더욱 굳건하게 한다.

이리하여 군자(君子)는 날이 갈수록 상달(上達)하여
덕(德)이 높은 산(山)봉우리처럼 된다.

대저
군자(君子)가 주도(酒道)를 연마(鍊磨)하여
덕(德)을 높임에 있어 먼저 삼가는 것은
정(精)을 손상(損傷)하는 일이요,
후(後)에는 널리 사물(事物)에 접(接)해 학문(學文)을 넓히는 일이다.

술에 취(醉)하면
마음이 빠르며 넓은 까닭에
짧은 시간(時間)에도 긴 세월(歲月)이 있으므로
군자(君子)는 취중(醉中)에 다양(多樣)한 인생(人生)을 수양(修養)할 수 있다.

옛 선인(仙人)이 말하기를
취중(醉中)의 하루는 평시(平時)의 한 해와도 같다고.
이는 취중(醉中)의 마음에 정(精)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君子)가 널리 여행(旅行)을 할 때도
그 지방(地方)에 도착(到着)해서는
그 지방(地方)의 술부터 음미(吟味)하는 것이다.

만일,
경치(景致)만 구경하고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그 지방(地方)에 있었다 하리요.

한평생(一平生)을 살면서 술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世上)에 있었다 하리요.

술을 마신 즉
천하(天下)가 정(情)답고
천하(天下)가 정(情)다운 즉
만상(萬象)이 일어나고
만상(萬象) 중(中)에는
큰 뜻이 있는 것이다.

만일(萬一) 어떤 사람이
천하(天下)에 나서 별 생각(生覺)이 없이 살아간다면
이는 금수(禽獸)와 다르지 않다.

사람은 생각(生覺)이 많으면
뜻이 많고
뜻이 많은즉
그 중(中)에서 도리(道理)를 찾을 수 있다.

군자(君子)의 생(生)에 있어서
술을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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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웅(07)님의 댓글

박홍웅(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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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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