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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를 이룬 이는 이렇게 사는 모양입니다.

류봉환(07) 작성일 07-11-13 07:48 8,650회 0건

본문

산은 고요하여 태고 같고
낮은 길어 어릴 적과 같네.

우리 집은 깊은 산 중에 있어
봄, 여름이 바뀔 때마다 푸른 이끼가 섬돌에 잔뜩 끼었고

떨어진 꽃은 길에 가득한데
문 두드리는 사람 없이 소나무 그림자만 들쑥날쑥 누웠고

짐승 소리가 아래 위에서 들리니
낮잠이 비로소 족하다.


산 속 샘물을 긷고
솔가지를 주워 다 쓴 차를 끓여 마시며

뜻대로 주역과 국풍과 좌씨 전·이소·태사공서(太史公書:사기)·
도연명과 두보의 시·한유와 소동파의 글을 읽다가

조용히 산길을 걸으며
소나무 대나무를 어루만져도 보고

노루새끼 송아지와
숲 속 우거진 풀 섶에 누워 쉬어도 보고

앉아서 흐르는 물을 희롱하며
양치를 하고 발을 씻어도 보고

이미 대나무 창 아래로 돌아오니
산에 갔던 아내와 아이들이
죽순과 고사리를 따다가 보리밥을 지어 줌에

기쁘게 한 그릇 배불리고
창가에서 붓을 놀린다.


크고 작은 것 따라서 수십 자를 짓고
감추어 두었던 법첩(法帖)과
필적(筆蹟)과 화권(畵卷)을 펼쳐놓고 보노라면

흥이 일면 소시(小詩)를 읊거나
혹 풀 위의 깨끗한 이슬을 한 두 가지 받아다가
다시 차 한 잔을 끓여 마시고

걸어서 개울가로 나서면
숲 속의 노인과 시냇가 친구들을 만나

누에치기와 길쌈을 묻고 농사를 말함에
맑은 날을 세어보고 비 온 날을 비교해 보며

절후를 따지고 시(時)를 헤어보다가
서로 여러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사립문 아래 서면
석양은 서산에 있고

자색 녹색 온갖 형상이 순간순간 아름답게 변하니
그 황홀함은 눈에 넣어도 좋을 진 저

소 등에서 피리소리 짝지어 돌아오고
달은 앞 개울에 둥실 떠올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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